“매일 ‘출첵’(출석체크) 하고 있어요. 하루에 350원 모으려고…”
경기 고양시에 사는 대학생 이모(24)씨는 매일 컴퓨터를 켜면 뷰티·미용 관련 인터넷 사이트 7곳을 방문한다. 그는 “한 사이트를 방문해 출석체크만 하면 50원이 모이고, 7곳을 차례로 돌면 350원을 적립할 수 있다”고 했다.
이씨가 말한 뷰티 관련 사이트는 7곳은 모두 국내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것으로 적립금이 연동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가입자가 모은 적립금을 일곱 군데 사이트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이씨는 이렇게 모은 적립금을 화장품 살 때 보태 쓴다. 이씨가 지난 한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 모은 돈은 1만500원이었다. 그는 “화장품 적립금을 모으려고 ‘출석체크’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여러명 있다”고 했다.
같은 사이트에서 적립금을 모았다는 대학생 김모(27)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이렇게 푼돈을 모으며 출첵하는 나를 보면 속이 상할 때도 있다”며 “기업의 이런 마케팅이 불법은 아니겠지만, 현금으로 소비자를 꾀는 방식이 옳은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일부 기업이나 마케팅 업체가 시행하는 현금ㆍ적립금 마케팅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금이나 현금성 포인트를 제공하는 이런 마케팅은 이벤트보다는 노동에 대한 대가의 성격이 있는데 그 대가가 너무 저렴하다는 것이다. 한 푼이 아쉬운 2030세대가 주요 대상이 되면서 ‘자발적 노예’가 됐다는 자조도 나온다.
2030세대는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적립금을 모은다. 광고를 보면 현금을 적립해주거나 퀴즈를 풀면 포인트를 쌓아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으면 적립금을 주는 업체도 있는데, 이를 위해 하루 종일 애플리케이션을 받았다가 지웠다가 하는 경우도 있다. 앱을 이용해 돈을 번다고 해서 이른바 ‘앱 테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앱테크’의 유형으로는 회원 가입을 하면 적립금을 주는 ‘가입형’, 광고하는 앱을 설치해야 적립금을 주는 ‘설치형’, 설문조사에 참여하면 적립금을 주는 ‘설문조사형’, 잠금 화면에 뜨는 광고를 보는 대가로 적립금을 받는 ‘잠금 화면 해제형’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모아본 청년들은 ‘앱 노동’ 라고 부른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대학생 박모(26)씨는 “일정 금액을 모으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들이고 품을 팔아야 하는데 그래봐야 모이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씨는 스마트폰서 잠금화면만 해제해도 돈이 적립되는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폰 잠금화면에 광고나 특정 콘테츠가 나오도록 하는데, 이용자들이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해제하고 화면의 광고나 콘텐츠를 한 번 볼 때마다 3~5원을 적립해준다. 동영상을 보거나 다른 앱을 내려받는 등 특정한 ‘미션’을 수행하면 20원에서 1000원까지 적립금을 받는다. A씨는 “처음에는 적립금이 쌓이는걸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용돈벌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지만, 하루종일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어도 1000원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특정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하거나 신용카드ㆍ보험에 가입하면 적립금을 더 많이 지원하기도 하는 수법을 동원하는 곳도 있다. 이용자들 스스로 개인정보를 헐값에 넘기는 셈이다. 적립금을 준다며 다단계처럼 이용자를 모으고 폐업해 버리는 범죄가 일어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최근 취업난이 심해지고 기업들도 내수 불황에 시달리면서 ‘불경기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며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소득이 적은 20~30대가 마케팅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의 경제 사정이 어려울수록 기업이 현금이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이벤트를 늘리는 일이 많다”며 “재미가 아니라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이벤트에 참여하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