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로운 政治 리더십으로 나라가 활기 되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입력 2016.01.01 03:23

1492년 콜럼버스가 배 세 척을 이끌고 신대륙에 도달했을 당시 유럽인은 중국을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콜럼버스의 항해 목적지도 애초 종이와 화약이 탄생한 선진국이었다. 그 시기 중국을 통치하던 명(明) 왕조는 나라를 개방하고 무역을 권장했다. 황제의 최측근 정화(鄭和)가 중동·아프리카까지 30여 개국을 순방한 것도 그때였다. 정화는 콜럼버스보다 1세기 앞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첫 항해에 나선 1405년, 선단(船團) 규모는 317척에 달했고 배마다 평균 90명이 탑승했다. 당시 중국과 유럽의 국력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문제는 그 후 중국의 정치였다. 관료와 환관(宦官)의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황제가 바뀌고 정치 주도권이 관료 집단으로 넘어가자 대형 선박 건조가 금지됐다. 항구가 하나 둘 폐쇄됐다. 중국은 개방형 국가에서 내부 지향적 국가로 변해갔다. 세계의 부(富·GDP)를 40% 안팎 창출한 것으로 추정되던 1등 국가가 정치 리더십의 혼돈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 차례 부흥기가 있었으나 유럽이 르네상스를 거쳐 산업혁명으로 뛰어갈 때까지 중국의 쇄국(鎖國)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중국이 유럽 후발 국가에 밀리게 된 갈림길은 명나라 때부터였다는 사실이 최근 많은 연구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내리는 결정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잘못된 결정이 누적되면 국가는 몰락한다. 1868년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단행될 때 우리는 그것이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하고, 42년 뒤엔 한·일 강제합방으로 이어질 줄은 내다보지 못했다. 일본의 유신 이후 우리도 40년 이상 국가 진로를 선택할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나라를 개방하자는 세력과 문을 닫자는 세력이 대결하며 세월을 보냈다. 조선의 정치 집단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나라와 백성을 식민 지배로 몰아넣었다. 일부 정치 엘리트들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해외로 망명했다. 그들은 명 왕조가 나라 문을 닫고 300여 년 흐른 뒤 유럽산 대포가 화약의 원조(元祖) 국가를 무너뜨리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도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세우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다. 1960년대부터는 나라를 개방하는 정책을 표방했고, 1987년에는 장기간의 군부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우리 세대는 역사의 고비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을 한껏 즐기기도 전에 한 시대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뚜렷한 증상은 경제에서 오고 있다. 벌써 5년째 2%대의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서 2% 성장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나라가 정체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000달러 안팎이다. 일본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기에 평균 4% 성장했다. 이대로 가면 선진국 문 앞에서 얼씬거리다 뒤로 밀려날지 모른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을 맞았다.

우리 경제는 경공업으로 출발해 중공업으로 국부(國富)를 쌓았다. 그러나 산업화의 완성은 서비스 업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글로벌 회계 법인이 탄생하고 여러 국가에서 계열 병원을 운영하는 한국형 다국적 병원, 골드만삭스·블랙스톤 같은 금융 회사가 나와야 한다. 경공업이 1차 산업혁명, 중공업이 2차 산업혁명이었다면 서비스 분야는 3차 산업혁명이다. 서비스 산업 혁명을 일으켜야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건만 아직 그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갈림길에서 정치의 방해로 나라가 전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해방 후 두 세대가 공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다면 앞으로 두 세대는 서비스 혁명을 통해 진정한 산업화를 이룩해야 할 과업을 안고 있다.

올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째 되는 해이다. 30년의 민주화 시대는 평화적 정권 교체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놓은 여러 제도의 부작용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대학은 너무 많아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민주화 바람을 타고 등장한 기구·단체들이 잉여(剩餘) 부실 자산으로 변질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의 부실화가 나라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5년짜리 단임 대통령들은 임기 내 업적을 내겠다고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을 겁 없이 밀어붙였다. 효율성을 무시한 채 세종시를 만들고 너도나도 무상(無償) 복지를 추진했다. 운동권 세력들은 해묵은 '민주화' 깃발을 휘두르며 국정 현안마다 반대 투쟁으로 맞서고 있다. 민주화의 과잉 현상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과도한 자유를 억제하는 성숙한 민주국가로 갈지, 아니면 자유의 권리를 멋대로 휘두르는 사이비 민주국가로 갈지 또 한 번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

때마침 동북아 정세도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미·일 동맹과 중국 간의 밀고 당기는 알력 속에서 작년 한 해를 보냈다.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각축(角逐)은 한반도 북부에 급변 사태가 일어나거나 힘의 공백이 생길 때 곧바로 우리 생존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단기적 현상 변화를 장기적 추세로 오판해 우리 스스로 안보의 좌표를 성급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작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한·중 관계를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켰지만 한·미 동맹에 적잖은 부담을 안겼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정가에 확산된 한국의 중국 경사론(傾斜論)은 올 11월 미 대선의 향방에 따라 양국의 쟁점 현안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한·미 관계를 하루빨리 '전승절 참관 이전'으로 복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 동맹을 강화해 중·일 대립의 영향이 한반도로 미치는 것을 차단하고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경제와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길이기도 하다. 조선일보는 2015년 통일과 나눔 운동을 통해 온 국민의 통일 열기를 실감했다. 올해는 '통일은 만남이다'는 주제로 민족의 열망을 더욱 농축(濃縮)해갈 것을 다짐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세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까지 3대(代)가 공존해야 하는 시대이다. 이는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나 죽기 전에 아들·손자 세대로부터 가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벌써 그런 조짐은 뚜렷하다. 흙수저,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불만이 청년층에서 쏟아지고 있다. 갈림길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결단을 미루면 생전에 후대(後代)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인식이다. 그 길목에서 조그만 실수들이 쌓이고 쌓이면 머지않아 나라가 무너지는 큰 재앙(災殃)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장 시대와는 달리 경제는 우울한 소식뿐이다. 이웃 나라들은 끊임없이 한반도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는 명나라처럼 기득권 세력들 간의 패싸움으로 인해 짜증 나는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 엘리트 집단이 지금처럼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만 보이면 국가의 쇠퇴(衰退)는 불 보듯 뻔하다. 올 4월엔 총선거가 있다. 온 나라에 성장 시대와 같은 뜨거운 활기(活氣)를 불어넣어 줄 생각을 가진 새로운 인물들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행동해야 할 때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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