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대 아파트 거래 수수료, 99만원이면 됩니다."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이런 광고 글이 실렸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춘다는 내용이다. 광고를 낸 사람은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소규모 법무법인(로펌)의 대표 K 변호사였다.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K 변호사는 부동산 중개 서비스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통하면서 '지금부터 등록한 매물 1000건은 중개 수수료 무료'라는 이벤트까지 진행 중이다.
변호사 숫자가 2만명을 넘어서면서 변호사들이 과거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분야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부동산 중개 업무가 대표적이다. 부동산 중개 시장 규모는 2조원대를 헤아리지만 개업한 공인중개사가 8만명, 자격증 보유자가 34만명을 넘어 레드오션(red ocean·성장이 정체됐지만 경쟁은 치열한 시장)으로 불린다.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 업무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6년 "부동산 중개 업무는 변호사의 업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일이 있다. 그런데도 거의 '덤핑' 수준의 수수료를 받고서라도 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변호사들이 등장한 것이다.
서울 지역의 변호사 숫자는 2004년 4140명에서 지난해 1만1652명이 되면서 3배로 늘었지만 이들이 수임한 사건은 20만건에서 41만건으로 2배가 되는데 그쳤다. 건당 평균 수임료가 떨어지면서 변호사 업계에서 통용되던 '최저 수임료 300만원' 공식도 깨졌다. 2년쯤 전부터는 사건 의뢰인이 수임료를 제시하면 수임을 희망하는 변호사들이 경쟁을 벌이는 '수임 경매' 사이트도 생겨났다. 사무실 유지비는 고사하고 월회비 5만원도 석 달 넘게 연체한 변호사가 서울에만 800명에 달할 정도로 변호사 업계가 침체하면서 나타난 신(新)풍속도다.
법무사·변리사·세무사 등 유사 직업군과 변호사들의 '밥그릇 싸움'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국회 입법(立法)을 둘러싼 로비와 힘겨루기까지 벌어진다.
과거엔 법무사의 영역으로 분류되던 '아파트 등기 업무'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변호사들과 법무사들 간에 분쟁이 일고 있다. 지난 8월 경남 창원의 신축 아파트 등기대행 업무를 수도권의 한 로펌이 따내자 입찰에 참여했던 법무사가 경찰에 해당 로펌을 고발했다. '업무 실적을 뻥튀기했다'는 이유였다. 충북 지역의 한 로펌은 법무사들이 1건당 15만~20만원씩 받는 수수료를 2만원으로 낮춰 신규 입주 아파트 등기 업무를 싹쓸이해 반발을 샀다.
특허 업무를 담당하는 변리사들은 올 들어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변리사 자격증을 자동으로 주는 법 규정을 폐지해달라"고 요구하며 5만명 넘게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다. 변호사들은 세무사들과는 '세무조정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해달라며 갈등을 빚고 있다. 변호사는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갖지만, 세무조정계산서는 국세청이 세무사 등록을 받아줘야 작성할 권한이 생긴다. 이 때문에 일부 변호사는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과거엔 변리사나 법무사를 변호사가 고용했지만 이젠 거꾸로 고용되거나 직접 변리사·법무사 업무를 해서라도 돈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다른 직업군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