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이 간다] "내 눈은 안 보여도… 1만명에게 빛을 찾아줬죠"

    입력 : 2015.12.19 03:00

    [시각장애인 돕는 김선태 실로암 안과병원장]

    친구가 수류탄 잘못 만져 실명… 미군종군목사 도움으로 美 유학
    뇌종양 시련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치돼 해외 의료봉사도

    문갑식 선임기자
    문갑식 선임기자
    서울 강서구 등촌로 181번지, 강서구의회 옆에 지상 8층 지하 4층의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실로암 안과병원이다. 시각장애인들이 개안(開眼)의 기적을 그곳에서 자주 맛본 것으로 유명하다. '실로암'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연못 이름이다.

    이 병원의 출발은 1977년으로 거슬러간다. 이정순 충북대 가정대 교수가 어느 날 충주 맹아학교를 찾았다. 거기서 이 교수는 눈에 흰점이 박힌 학생을 봤다. 그는 "누군가 저 흰점만 제거해준다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안타까워하다 "내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교수는 남편이 북한으로 피랍된 후 가톨릭의대에 다니는 외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뭔가에 이끌린 듯 아들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500만원을 내놓았다. 당시 60세였던 김종대씨를 시작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보는 기쁨'이 잇따랐다. 김선태(金善泰·75) 실로암 안과병원장은 그때 예수교 장로회 시각장애인 선교회 총무였다. 3대 독자인 그의 삶은 6·25 직후인 1950년 7월 4일 나락으로 떨어졌다. 친구들과 놀다 와보니 포격으로 집이 잿더미가 돼 부모 시신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로부터 2주 뒤 그는 왕십리와 뚝섬 일대에서 같은 고아 신세인 친구 8명과 콩과 참외를 서리해 먹다 참변을 당했다. 친구가 만지던 수류탄 불발탄이 터진 것이다. 친구들은 목숨을 잃고 김선태는 두 눈을 영원히 잃고 말았다.

    김선태 목사가 서울 강서구 실로암 안과병원 원장실에서 해외 의료봉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선태 목사가 서울 강서구 실로암 안과병원 원장실에서 해외 의료봉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갑식 기자
    거지로 거리를 헤매던 그를 구한 건 미군 종군목사였다. 그의 도움으로 서울 맹아학교에 들어갔고 숭실중·고, 숭실대,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거쳐 미 매코믹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정순 교수가 행한 개안의 기적을 곁에서 접한 것은 운명이었다. "그때부터 시각장애인을 치료하는 병원을 반드시 짓겠다고 마음먹었지요." 1981년은 세계장애인의 해였다. 세검정 예능교회에서 시각장애인 돕기 자선음악회가 열렸다. 음악회 도중 오경숙이라는 소녀가 개안 수술 뒤 빛을 되찾은 소감을 발표했다. 음악회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그 자리에 있었던 장치혁 전 고합그룹회장 등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병원을 짓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인가? 김선태 병원장은 "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내게 그 일을 맡기셨다"고 했다.

    "두려웠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지요." 1986년 마침내 4층짜리 병원이 완공됐지만 밀려드는 환자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김선태는 다시 병원을 짓기로 했다. "시력을 잃기 전 다녔던 왕십리 중앙교회를 찾아갔어요. 신도들에게 호소했습니다. 한장에 1000원씩인 벽돌을 기증해달라고요. 10장도 좋고 100장도 좋고 1000장이면 더 좋다고…." 벽돌이 쌓여갈 무렵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2000년에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종양은 제거됐지만 의사 선생님이 잘해야 3~4년 더 살 거라고 했어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병원이 완공될 때까지만 살려달라고. 2005년 완치 판정을 받고 그해 1월 1일 새벽기도를 했어요. 감사하다고."

    지금까지 1100만명을 무료 진료해주고 1만명 이상의 시력을 찾아준 실로암 안과병원은 이제 세계로 의료 혜택을 퍼뜨리고 있다. 케냐, 베트남, 필리핀, 탄자니아, 우즈베키스탄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안과병원을 지어줬으며 현지 의사들을 국내로 불러 교육했다.

    그랬던 실로암 안과병원에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에서 새해 신규 사업을 해야 한다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게 되자 한국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외국의 시각장애인들도 덩달아 실망하고 있다. "KOFIH에서 지난해 1억3000만원, 올해 9억원을 지원받았습니다. 그와 별도로 우리 예산도 4억원가량 썼고요. 지금도 한국 의료진이 올 때만을 기다리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요. 해외봉사는 한 번 하고 마는 게 아닌데, 우리 국격(國格)도 있고…."

    김선태의 삶은 왜 이리도 불행과 기적이 교차하는 것일까. "이번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눈을 잃고 거지 왕초까지 지내다 목사가 된 제 일생에서 이 위기마저 넘을 기적을 일으켜달라고요."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