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27. 전 두산 베어스)는 누가 뭐래도 ‘한국 최고의 타자’이다. 현 시점에서 따져 성실성, 타격의 정교함, 수비력, 꾸준함, 체력 등을 종합, 평가하면 김현수를 능가할 만한 타자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그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누구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팀 우승에 대한 부담감을 훌훌 떨쳐버린 그를 만류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마구잡이식 메이저리그 진출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현수는 지난 2008년 10월 31일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최종 5차전(잠실구장)에서 팀이 무릎을 꿇자 너무 상심한 나머지 라커룸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김현수가 남들이 보지 않는 덕 아웃 옆 후미진 곳에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물끄러미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잔영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험한 승부 세계에 밥줄을 대고 있는 당시 21살의 그의 눈물은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곱씹는 회한과 자성의 뼈저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차라리 ‘아픔’이었다.

그 7년 뒤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한 가지 소원을 기어코 이루어냈다. 그리고 큰 무대, 메이저리그 진출 꿈을 부풀리고 있다. 아직 그의 눈앞에 확실한 길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볼티모어 구단이 계약기간 2년, 연봉 300만~400만 달러를 제시했다는 지역 유력지 볼티모어 선의 보도가 나왔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손짓에도 불구하고 김현수가 이를 선뜻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단순히 ‘그만하면 수용할 수 있는 연봉수준’이라는 관측이 있긴 하지만 세금과 에이전트 몫 등을 감안하면 실제 손에 넣을 수 있는 돈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명분은 있으나 실리가 변변치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대개 세금이 절반에 이르는데다 계약기간이 2년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번 써보고 버릴 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리그 보장 여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현수가 일본 무대로 진로를 변경하거나 아예 국내 무대에 잔류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본 구단 가운데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타선의 무게중심이었던 이대호가 떠나 빈자리도 생겼고, 김현수를 유심히 살펴온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손정의 회장이 김현수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아직 나이가 젊은 김현수가 일본을 우회, 메이저리그 문을 다시 두드릴 여지는 충분히 있는 셈이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국내무대 유턴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김현수 자신은 국내에 남을 경우 두산에서 뛰겠다고는 했다. 그렇지만 올 시즌 중 NC 다이노스와 KIA 타이거즈가 김현수 영입을 염두에 둔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설도 있는 만큼 돌아올 경우에는 결국 조건이 중요할 것이다.

김현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직 많다. 메이저리그 행이 장기화할 공산도 있고, 전격적으로 일본이나 국내 무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김현수 라면’, 그 어느 구단이 탐을 내지 않겠는가.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은 최근 사석에서 김현수에 대한 뒷얘기를 이렇게 들려줬다.

“김현수는 감독이라면 누구라도 좋아할 선수다. 올 시즌 중 발이 아프다고 해서 경기 전에 출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발을 땅에 구르며 끄떡없다는 표시를 몸으로 보여줬다. 좌익수 수비 때 자칫 부상을 당할 수 있는데도 몸을 사리지 않고 펜스에 부딪히며 타구를 잡아내 염려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현수는 최고의 외야수” 라고.

두산 구단에는 잔인하겠지만, 김현수의 진로를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그런데, 두산 구단은 과연 김현수를 잡을 의지가 있었을까. 진정 김현수를 잡으려고 했다면 ‘시즌 중에 이미 아퀴를 지어야하지 않았을까’하는 시각도 있다는 것을 두산 구단도 알 것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