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걸그룹'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 공연을 돌연 취소한 이유와 관련, 우리 정보 당국은 "공연 내용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숭배 일색이었고, 이에 중국 측이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주호영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유선상으로 보고받은 내용"이라며 "처음에 중국 측은 (최고 지도자급인) 당 정치국원을 참석시킬 예정이었지만 막상 리허설을 통해 공연 내용을 접한 뒤 참석 인사의 격(格)을 낮췄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 과정을 공연 취소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봤다"고 말했다. 모란봉악단은 지난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 공연에서도 '우리의 행복, 우리의 영광 김정은 동지' '그리웁던 (김정은 동지) 품에 안겨 행복에 눈물짓습니다' 등의 찬양곡을 연주했다.
이와 관련, 대북 라디오 매체인 자유북한방송은 이날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 김정은의 첫사랑으로 알려진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 중국 측의 공연곡 교체 요구와 '최고 존엄 모욕' 발언에 발끈해 철수 명령을 내렸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모란봉악단의 리허설(11일)을 본 뒤에야 공연 내용을 파악한 중국 측 관계자들은 "예술에 사상을 섞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죽어도 혁명 신념 버리지 말자' '우리는 누구도 두렵지 않아' 등의 곡을 공연 프로그램에 넣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현송월을 비롯한 모란봉악단 핵심 관계자들은 "우리의 공연은 원수님(김정은)께서 직접 보아주시고, 지도해주신 작품이기 때문에 점 하나, 토 하나 뺄 수 없고, 빼서도 안 된다"고 맞받았고,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 등 대사관 관계자들도 여기에 합세하며 리허설 이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이런 사실이 평양까지 보고됐고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지재룡에게 '현송월을 비롯한 악단 관계자들의 결심을 믿겠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와 선전부는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이 공연에 포함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고, 이런 내용이 포함되는 한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자유북한방송은 전했다. 소식통은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던 가운데 현송월이 갑자기 (공연장인) 국가대극원 관계자의 말을 문제 삼았고, 현송월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와 선전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수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현송월이 언급한 국가대극원 관계자는 모란봉악단 공연의 조명 보조를 맡았던 기술팀 직원이라고 한다. 그가 모란봉악단 관계자들에게 "김정은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것을 당신들도 알고 있느냐" "조선 인민들이 잘살려면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게 현송월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모란봉악단이 돌연 귀국한 이유에 대해 "신화통신이 이미 관련 문제에 대해 보도했다"며 "추가로 제공할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이날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와 관련해 4~5개의 질문을 받았으나 "신화통신이 보도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신화통신은 지난 12일 '업무상 소통 문제'로 공연이 무산됐다고만 밝혔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날 공연 취소에 대해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논평도 하지 않았다. 중국 인터넷에선 모란봉악단과 관련한 댓글이 대거 삭제됐다. 이는 중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모란봉악단 공연을 주선한 공산당 대외연락부(중련부)는 이날 쑹타오 중련부장이 북한 공연단장인 최휘 노동당 제1부부장과 악수하는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두 사람이 접견 때 나눈 대화 내용도 4~5문장에서 한 문장으로 줄여 홈페이지에 올려놨다. 쑹타오 부장은 12일 베이징에서 막판까지 북한을 설득했지만 공연단을 되돌리지 못했다. 중련부는 북한 공연단 인솔자의 사진 삭제를 통해 공연 취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