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쇼크, 피해자의 뇌까지 망가뜨린다

    입력 : 2015.12.14 03:00 | 수정 : 2015.12.14 10:21

    [뇌 기능 저하 확인… 검찰 "조기치료 위한 골든타임 확보해야"]

    뇌질환으로 이어질 확률, 성폭행 피해자 최대 80%
    "3개월 지나면 치료 힘들어"

    작년 초 성관계를 거부하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폭행을 당한 50대 여성 김모씨는 이후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간단한 장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행동에도 이상이 생겼다.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검찰은 김씨에게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권했다. 김씨의 뇌 MRI 결과를 분석해보니 이마와 맞닿은 부분인 전전두엽(前前頭葉)이 손상돼 있었다. 이 부분 혈액 순환도 원활하지 않았다. 전전두엽은 뇌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부분이 손상되면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대검찰청 강력부(부장 변찬우 검사장)는 지난해 10월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김씨를 포함한 범죄 피해자의 뇌 영상 60건을 촬영해 분석한 결과, 강력 범죄가 피해자의 뇌 구조에 물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13일 밝혔다. '외상 후 스트레스성장애(PTSD)' 같은 심리적 영향뿐만 아니라 뇌기능 저하 현상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체 영상의 절반 이상에서 이상(異常) 소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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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한 40대 여성도 올 초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뒤 강박장애 현상을 보였다. 뇌 영상을 보니 전전두엽과 해마 등의 기능이 떨어져 있었다.

    연구원의 분석 결과, 범죄 피해자 중에는 뇌 기능 일부가 같은 연령대 평균보다 떨어지는 이가 많았다.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을 비롯해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 정보 전달 통로 역할을 하는 '백질' 등에서 주로 이상이 발견됐다. 연구를 맡은 이화여대 윤수정 교수는 "범죄는 피해자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고 이것이 뇌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뇌질환으로 이어질 확률이 최대 80%에 이른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로 인한 뇌 기능 저하에 대해서는 미국 등 해외에서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 실증(實證)적 연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을 맡은 뇌융합과학연구원은 지난달 서울고법이 의뢰한 '토막살인범' 박춘풍·김하일의 뇌 영상 분석도 진행하는 곳이다.

    검찰이 이번 연구에 나선 것은 뇌기능 저하 치료는 범죄 피해 이후 3개월이 '골든 타임'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치료가 아주 어려워진다"며 "신속하게 피해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오는 2019년까지 5년 동안 이번 연구를 계속 진행해 분석 사례를 충분히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범죄 피해자 심리진단·치유 앱(APP)'을 개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피해자들이 쉽고 간단하게 자신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박지영 대검 피해자인권과장은 "범죄 피해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에 이어 뇌기능 저하가 발생하는 만큼 초기 심리 진단이 중요하다"며 "범죄 피해자들은 치료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진단·치유 앱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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