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은 11일 내일 당장 분당(分黨)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피아(彼我) 구분 없는 '만인(萬人)의 투쟁'이 전개됐다. 당 대표와 지도부를 구성하는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 면전에서 사퇴를 요구했고, 문 대표 사퇴를 요구한 중진들에게 486 의원은 "먼저 용퇴(총선 불출마)부터 하라"고 했다. 친노(親盧)·비노(非盧)나 주류·비주류 같은 기존 계파 갈등에 세대 갈등과 누적된 감정까지 폭발했다.
기존 최고위 참석 멤버 중 이종걸 원내대표, 주승용·오영식 최고위원, 최재천 정책위의장 등이 빠진 채 진행된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선 유승희 최고위원이 문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유 최고위원은 "문 대표는 사퇴하고 당헌에 따라 통합 전당대회 준비위를 책임지고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 최고위원은 그동안 문 대표와 같은 주류 쪽에 속한 의원으로 분류돼 왔다. 유 최고위원의 기습적 사퇴 요구에 문 대표는 초점 없이 정면을 응시했고, 전병헌 최고위원은 고개를 돌렸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그런 의견이 있다면 따로 조용히 논의해 수습해나갈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마이크로는 멋지게 들려도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최고위원들의 사퇴와 회의 불참, 잔류 최고위원들의 분열로 지난 2월 선출된 야당 지도부는 이날 와해된 모습이었다.
같은 시각 국회 부의장실에선 3선 이상 야당 중진 의원 15명이 모여 현 지도부를 대체할 비상대책위 구성을 요구하며 사실상 문 대표 퇴진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는 비주류뿐 아니라 문희상, 유인태, 원혜영 의원 등 문 대표에 우호적인 중진들도 대부분 참석했다. 그러나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회의 내용을 발표하던 순간, 486 그룹의 최재성 의원이 회의장에 들어와 "비대위의 전당대회 개최는 당헌·당규 위반"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최 의원은 총무본부장(사무총장에 해당)으로 문 대표 지도부의 핵심이다. 최 의원은 "중진들이 먼저 용퇴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다"며 "전부 황금지역구의 중진들이…"라고도 했다. 강창일 의원은 "거참, 따로 이야기하지 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느냐"며 불쾌해했다. 최 의원은 따로 기자회견도 열어 비대위 구성을 요구하는 중진들 중재안을 '봉합'으로 규정하면서, "문 대표가 기존의 봉합으로 회귀한다면 저부터 문 대표와 헤어질 것"이라고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중진들의 중재안을 분열을 막기 위한 시도 보다는 기득권 지키기로 보는 것이었다. 문 대표도 중진들의 퇴진 요구에 "재신임 정국 때 중진들 중재안을 내가 수용하면 앞으로 흔드는 일이 없겠다고 약속했는데, 돌아서자마자 계속돼 지금에 이르게 됐다"며 "중진들도 조금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상황을 수습하는 노력을 해달라"며 불만을 표했다.
최근 야당에서는 물리적 폭력 행사만 없을 뿐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험한 말들이 오가는 등 감정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비주류인 '구당(救黨) 모임'에서 문병호 의원은 "친노는 그동안 과실을 먹었으니까 계속 먹어야 하나. 안 의원은 그동안 정치적 기부(寄附)를 해왔으니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참석 의원이 문 대표를 계속 '문재인'으로 부르자, 다른 의원은 "그래도 당 대표인데, 문 대표로 불러줘야지"라며 비꼬기도 했다. 주류 측 강기정 의원은 지난 10일 최재천 정책위의장의 사퇴를 겨냥해 "정무직 당직자들이 당의 신용카드를 쓰면서 당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했다. 문 대표도 이종걸 원내대표와 통화에서 비주류 의원의 실명을 언급하며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지도부나 흔들고…"라고 했다.
중앙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새정치연합 전남도의원 52명 중 44명은 이날 "문 대표와 당 지도자들에게 살신성인의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문 대표 사퇴와 비상대책위 구성을 요구했다. 이들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중대한 결단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