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史 넘어 우주 끝까지… 우리 책장의 '20년 벗들'

입력 2015.12.12 03:00 | 수정 2015.12.12 13:38

20년 스테디셀러 10

어수웅 Books팀장
어수웅 Books팀장

[편집자 레터] 스테디셀러는 베스트셀러와 다릅니다

지난주 '2015 올해의 책 10'에 이어 이번 주에는 '20년 이상 사랑받은 스테디셀러'를 소개합니다. 교보문고 회원 2090명 등 일반 독자와 교수·출판 평론가·출판사 대표 등 전문가 독자 30명의 추천을 받아 조선일보 Books팀이 최종 선정한 리스트입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책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탐구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1980년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이 책은 1981년 문화서적, 1984년 학원사를 거쳐 2004년 사이언스북스와 정식 계약을 맺고 서울대 천문학과 홍승수 명예교수 번역으로 출간됐죠.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은 지지를 받을지 예감했느냐고 묻자, "내가 무슨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라며 너털웃음을 짓더군요.

기이합니다. 인문서도 아니고, 우주와 생명이잖습니까. 과학적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인데요. 홍 교수도 처음에는 그 우려 때문에 주석(註釋) 달다가 세월 다 보낼까 봐 고사했다는군요. 하지만 작정하고 번역에 달려들면서 오히려 놀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디테일 약간을 제외하면 주석을 추가할 일이 없을 만큼 근본적인(fundamental)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는 점, 또 하나는 천문학 등 과학만이 아니라 신화, 문학, 역사 등 인문학과 사회학을 총망라하고 있었다는 점. 지금이야 융합과 통섭이 유행어가 된 세상이지만, 그런 개념조차 희미하던 1980년에 이미 철저한 융합을 실천하고 있었다는 거죠.

어쩌면 '코스모스'의 위대함은 이 대목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고, 믿기 싫어하는 것들은 생각의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는 이분법과 양극화의 세상. 홍 교수는 '코스모스'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더군요. 특히 정책 입안자들에게 추천했습니다.

스테디셀러는 '반짝'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와는 다릅니다. 멀게는 1961년에 초판을 찍은 '광장', 많게는 294쇄를 찍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우리의 리스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고 절대적인 목록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20년 이상 사랑받은 우리 시대 고전(古典)의 흐름과 추세를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새로운 고전을 읽어 보는 겨울이 되시기를.

'코스모스'
 ['인터스텔라' '마션' 상상력의 거대한 뿌리]

코스모스 | 칼 세이건 지음 |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만8500원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기원에 궁금증을 갖지 않을까. 우주의 기원, 지구의 기원, 생명의 기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관계를 밝힌 책. 초판 발행 후 3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인터스텔라의 상상력, 마션의 모험이 기대고 있는 거대한 뿌리"(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과학사) "현대우주론을 대중에게 유려하게 전파한 책"(이두갑 서울대 교수) "다하지 않는 새로움으로 우주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다"(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등이 추천 이유다.

이번 스테디셀러 조사에서 전문가의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1981년 문화서적을 거쳐 2004년 사이언스북스에서 초판. 양장본(4만5000원) 12쇄, 특별보급판 49쇄. 통산 30만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 시리즈 덕분에… 서점 인문 코너가 생겼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유홍준 지음 | 창비 | 각 권 1만6500원

마이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주눅이 들었던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눈 비비고 다시 보게 한 도화선이 된 책. 이 시리즈의 히트가 서점의 인문서 코너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국토가 살아 있는 문화재임을 알려줌으로써 우리의 전통이 자랑스럽고 유산이 위대함을 직접 발로 확인하게 만든 책"(이화여대 김미현 교수), "아는 만큼 보인다는 슬로건 아래 답사 여행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여행을 유행시켰다"(강맑실 사계절 대표)는 지지를 얻었다. 20년 넘게 롱런하며 현재진행형 스테디셀러 시리즈의 전형이 됐다. 1993년 초판 1권 발행. 현재 국내편 8권, 일본편 4권 출간. 1권은 개정 2판 25쇄. 총 375만부.

'월든'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지금도 묵직한 19세기의 메시지]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1만3000원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1852년에 쓰인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월든 호숫가에 1845년부터 2년간 살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소박한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역설했다. 1993년 5월 이레출판사에서 나와 54쇄 40만부를 찍었고, 2011년 8월부터는 은행나무에서 출간됐다. 이후 19쇄 10만부를 찍었다. 지금까지 5개 출판사에서 모두 100만부 정도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로마인 이야기'
[천년제국의 흥망성쇠… 역사와 픽션 사이를 걸어간 작품]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지음|김석희 옮김|한길사|전15권|각 권 1만2500~1만6500원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아베 총리를 지지하면서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와는 별도로 천년제국을 이끌었던 역사 속 인물들을 마치 현실의 정치인을 보는 것처럼 써나간 작가의 필력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읽는 내내 역사와 픽션의 사이 어딘가를 걷는다. 제국(帝國)에 대한 찬미, 카이사르에 대한 동경과 키케로에 대한 경시 등 호오(好惡)가 분명하지만, "(로마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래서 위대한 순간도 없이, 그렇게 스러져갔다"고 말할 때의 시선은 담담하다. 1995년 시작해 2006년 2월 15권으로 완간됐다. 1권 107쇄, 총 990쇄, 350만부.

'이기적 유전자'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가장 대중적인 생물학 책]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홍영남·이상임 옮김|을유문화사|1만8000원

"인간이란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한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가 35세에 발표한 이 야심만만한 저작은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생물학 책으로 꼽힌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反轉)과 화려한 비유를 동원한 필력 덕분에 가끔은 과학 서적이 아니라 추리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평처럼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난해한 주제를 일상 언어로 표현하는 과제를 훌륭하게 이뤄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1993년 초판 발행, 100쇄, 40만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37년간 294쇄… 몽환적 문체로 쓴 70년대의 삶]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1만1000원

1976년 문학 계간지 '문학과 지성' 겨울 호에 처음 연재를 시작해 '뫼비우스의 띠' '칼날' 등 12편으로 이뤄진 연작 소설.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고통을 간결한 문체와 환상적 분위기로 잡아낸 명작'이라는 찬사를 들어왔다. 문학 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치열한 현실 인식과 문학적 실험 정신이 어울려 잘 빚은 항아리"라고 썼다.

여느 리얼리즘 소설과 달리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상징과 다양한 서술 기법은 검열과 판매 금지를 피하기 위한 작가의 선택이었다고 했다. 억압적 시대가 높은 문학적 성취에 기여한 점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19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 발행. 2000년 7월부터 이성과 힘으로 판권을 옮겼다. 총 294쇄, 134만부.

'태백산맥'
[전쟁·분단… 한국文學의 백두대간을 넘다]

태백산맥 | 조정래 대하소설 | 해냄 | 전 10권 | 각 권 1만3800원

해방 공간과 6·25전쟁을 거쳐 분단이 고착화된 1953년까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반도의 밑바닥 삶과 역사.

외서댁과 하대치의 육두문자와 음담패설이 난무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데올로기의 위선을 벗고 생생한 목소리가 되었다.

"국가에 대한 정치적·역사적 상상력에 근본적인 성찰을 가져온 장편 대하소설"(김동식 인하대 교수), "우리 역사의 허리춤에 숨겨졌던 질곡의 속살"(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분단 문학의 보고. 태백산맥을 넘지 않고는 온전히 우리 문학의 백두대간을 등반하기 어렵다"(백원근 책과 사회연구소 대표) 등의 평가다.

1986년 초판 1권 발행. 1989년 10권 완간. 1권 248쇄. 통산 860만부.

'우리 나무 백가지'
[전문성과 대중성 두루 갖춘 '우리 나무 예찬']

우리 나무 백가지|이유미 지음|현암사|3만2000원

흔히 '책이 삶을 바꾼다'고 하지만, 이 책은 저자의 삶까지 바꿨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1994년 산림청 임업연구사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뒤, 이듬해 이 책을 펴냈다.

"불붙듯 피어난 붉은 꽃잎에 바다 소금이 변하여 된 듯 흰 눈 자락이라도 흩날리다 앉으면 동백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된다"처럼 정감 어린 '나무 예찬'에 독자들이 호응을 보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주제로 하면서도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자연과학 교양서는 사실상 처음"이라는 출판 평론가 표정훈의 말 그대로였다. 이 책을 통해 숲 해설가와 식물학자들이 탄생했고, 저자는 지난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수목원장이 됐다. 1995년 초판 발행, 27쇄, 1만4000부.

'광장/구운몽'
["文學史에서 1960년은 4·19보다는 '광장'의 해"]

광장/구운몽|최인훈 지음|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6·25전쟁의 석방 포로인 주인공 이명준이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 인도행을 택한다는 결말을 통해 '광장'은 협소했던 상상력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전의 전쟁 소설과 사뭇 다른 결론은 1960년 4·19혁명 직후에 발표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광장'의 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4·19가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듯, 이명준도 인도에 닿지 못하고 짙푸른 남중국해에서 행방불명되고 만다. 문학 평론가 김병익은 "분단 상황이 해소되고 나서도 '광장'은 여전히 읽힐 것"이라고 했다. 1961년 초판 발행, 191쇄, 67만부 판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예수님은 왜 우릴 싫어해?" 현실이 고달픈 다섯 살 제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J.M.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동녘|1만원

"어째서 착한 아기 예수는 날 싫어하는 거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까지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느냐고?" 다섯 살 꼬마 제제는 따로 배우지 않고도 능숙하게 읽을 줄 아는 영리한 소년. 하지만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고, 어머니와 누나가 밀린 셋돈을 내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까지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다. 친구처럼 지내던 뽀르뚜가 아저씨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제제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브라질 작가의 자전적 성장 동화에는 이렇듯 슬픔이 어려 있어 세대를 건너뛰며 사랑받았다. 1982년 초판 발행, 67쇄, 500만부.


[20년 스테디셀러(11~50선·가나다순)]

거대한 뿌리(김수영, 민음사)
개미(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구별짓기(피에르 부르디외, 새물결)
군주론(마키아벨리, 까치)
그대에게 가고 싶다(안도현, 푸른숲)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시공주니어)
꿈꾸는 달팽이(권오길,지성사)
나목(박완서, 세계사)
나무야 나무야(신영복, 돌베개)
데미안(헤르만 헤세, 민음사)
말과 사물(미셸 푸코, 민음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 학고재)
무진기행(김승옥, 문학동네)
미학 오디세이(진중권, 휴머니스트)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삼국지(이문열, 민음사)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 한길사)
서양미술사(E.H. 곰브리치, 예경)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을유문화사)
소피의 세계(요슈타인 가아더, 현암사)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페터 회, 마음산책)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조반니노 과레스키, 서교출판사)
아직도 가야 할 길(M. 스콧 펙, 율리시즈)
인간 등정의 발자취(제이콥 브로노우스키, 바다출판사)
임꺽정(홍명희, 사계절)
입속의 검은 잎(기형도, 문학과지성사)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열린책들)
연금술사(파울루 코엘류, 문학동네)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장길산(황석영, 창비)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전환 시대의 논리(리영희, 창비)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민음사)
철학과 굴뚝 청소부(이진경, 그린비)
토지(박경리, 마로니에북스)
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행복한 책 읽기(김현, 문학과지성사)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어령, 문학사상사)

['20년 스테디셀러'추천해주신 분들]

교보문고 회원 2090명, 강맑실 사계절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강일우 창비 대표, 김기중 더숲 대표, 김수진 푸른숲 부사장, 김영곤 21세기 북스 대표,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김현종 메디치미디어 대표,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박상준 민음사 대표, 박윤우 부키 대표, 박종만 까치글방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송영석 해냄 대표, 양원석 RHK 대표,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 정중모 열림원 대표, 조미현 현암사 대표, 조형준 새물결 주간,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표정훈 한양대 특임교수,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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