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와 기계, 뒤엉킨 시대가 왔다

조선일보
입력 2015.12.12 03:00

3000여 종 사는 인공생태계… 美사막에 '유리온실' 만들어

과학 잡지 편집장인 著者 우연히 실험장 체험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들이 분적으로 나눌 수 없어"

'통제 불능'
통제 불능|케빈 켈리 지음|이충호·임지원 옮김|김영사|932쪽|2만5000원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에서 외부와 격리된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실험이 벌어졌다. 철골과 유리, 콘크리트로 만든 1만2500㎡(약 3700평) 규모의 거대한 유리 온실 구조물에는 실제 지구처럼 열대 우림과 사막, 습지와 거주지 등 다양한 지역을 조성했다. 아마존 유역에서 가져온 식물 300종을 비롯해 3000여 종의 생물이 거주하는 대형 생태 실험장에는 8명의 인간도 들어가서 살기로 했다. 인류가 사는 지구에 이은 '두 번째 생태계'라는 의미에서 이 실험장에는 '바이오스피어2(Biosphere2)'라는 이름을 붙였다. 8인용 '노아의 방주'와 다름없었다.

공사가 완공된 직후인 1991년 봄, 과학 잡지 '와이어드(Wired)'의 초대 편집장인 저자 케빈 켈리가 운영자들의 관리 실수 때문에 안내인 없이 혼자 이곳에 들어갔다. 공사하던 인부들은 작업을 마친 뒤 귀가했고, 운영자들은 언덕 위의 조명을 이미 끈 상태였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자연'이라는 형용 모순에 대해 켈리는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거대한 대성당 내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바깥 세상인 지구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갈색 사막이었지만, 반대로 바이오스피어2의 내부는 초록이 무성한 생명의 세계였다. 높이 자란 풀과 욕조에 떠다니는 해초, 물 위로 첨벙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보면서 그는 "고작 몇 시간을 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몇 년치의 생각거리를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에 지구 생태계와 흡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문을 연‘바이오스피어2’.
미국 애리조나에 지구 생태계와 흡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문을 연‘바이오스피어2’. 지금은 애리조나대가 연구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애리조나대 제공
수년치의 고민거리를 잔뜩 싸들고 나왔던 저자가 1994년 발표한 과학 서적이 '통제 불능(Out of Control)'이다. 참고 문헌과 찾아보기를 빼고 한글판 본문만 89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의 화두(話頭)를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신조어인 '비비시스템(vivisystem)'이 될 것이다. 살아 있다는 의미의 '비비(vivi)'와 체계를 뜻하는 '시스템'의 합성어인 이 말은 "태어난 것들(생명)과 만들어진 것들(인공)의 결합"을 뜻한다.

생태계 같은 생명 공동체와 로봇이나 인공 두뇌처럼 인간이 만든 기계가 더 이상 '칼로 두부 자르듯' 둘로 나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어우러지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생물학과 컴퓨터·기계 공학이 뒤엉키는 세상이라는 저자의 주제 의식은 물질과 정신을 명확하게 구분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元論)'에 대한 훌륭한 지적(知的) 도전이기도 하다.

원서 출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카오스와 퍼지(fuzzy) 이론 등 이 책의 문제의식들은 어느새 퀴즈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출제되는 상식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여전히 의미 있다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우려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의 시대에도 꿋꿋하게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학문적 주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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