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일제히 무대에 오르는 '무용계 최대 히트 상품'의 시즌이 돌아왔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동화 이야기, 친근한 차이콥스키 선율로 가족 관객을 사로잡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국립발레단(예술감독 강수진),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 서울발레시어터(SBT·단장 김인희)의 국내 3대 발레단이 모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 정면 승부에 나서며, 스타 무용수들을 총출동시키다시피 한다. 물론 '호두'라고 해서 다 같은 호두는 아니다. 발레단마다 독특한 색채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호두를 까는 재미다.
◇국립발레단―인형이 사람이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을 이끌었던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했다. 어린이보다 어른 관객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고난도 회전과 도약 같은 발레 고유의 기술을 자주 보여준다. 호두까기 인형으로 나무 소품이 아니라 어린이 무용수가 나온다는 점도 색다르다. 이 어린이는 공연 내내 기마 자세에 가까운 발레 포지션 2번 '그랑 플리에' 자세를 취해 관객 시선을 사로잡는다. 18~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7-6181
◇유니버설발레단―마술 한번 보여줄까?
아기자기하고 동화 느낌이 강한 원작 분위기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바실리 바이노넨이 안무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버전이다. 따뜻하고 화려한 무대가 강점이며, 1막에서 눈송이 요정 20명이 군무를 펼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작품의 사회자 격인 드로셀마이어 역 무용수가 실제 마술을 보여줘 어린이 관객이 환호한다. 주인공 클라라의 아역이 비중 있게 출연하는데, 올해는 문훈숙 단장의 딸 문신월(경복초 6)양이 이 역할을 맡는다. 18~31일 유니버설아트센터, 070-7124-1798
◇서울발레시어터―한국 춤도 나온대
안무가 제임스 전의 현대적 버전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순서를 섞었고 극 진행을 빠르게 해 경쾌한 느낌을 살렸다. 각 나라의 전통 춤이 등장하는 장면에 상모돌리기, 장구춤 같은 한국 춤이 등장하며, 한복을 입은 무용수도 나온다. 56세의 제임스 전이 올해도 드로셀마이어로 출연한다. 24~26일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1577-7766
◇해외 공연―16금(禁)에서 고아원까지
'호두까기 인형'은 1892년 러시아 초연 때 전설적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안무한 이래 수십 편의 재안무작이 나왔고, 세계 발레단은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공연한다. 조지 발란신판(뉴욕시티발레), 루돌프 누레예프판(파리오페라발레), 마하일 바리시니코프판(아메리카발레시어터) 등이 대표적이다. 파격적인 작품으로는 미국의 컴퍼니XIV가 2013년 선보인 '호두까기 인형 루즈(Rouge)'가 있다. 어두컴컴한 조명 속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관능적인 춤 동작을 펼치는 '16세 미만 관람 불가' 작품이다. 영국 안무가 매슈 본 판은 줄거리 자체를 고아원 탈출 사건으로 바꿨다. 미국 마크 모리스 댄스그룹의 '더 하드 넛'은 '호두까기 인형'을 현대무용으로 바꾼 작품인데, '눈송이 왈츠'에선 무용수들이 반짝거리는 가루를 공중에 뿌리면서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