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경찰의 체포 영장 집행이 10일로 보류됐다. 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9일 오후 5시 기자회견을 열어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 영장 강제 집행은 갈등 해소가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며 "내일(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할 테니 경찰과 민노총은 행동을 중단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한 위원장을 체포하려고 출동했던 경찰도 철수했다. 이날 조계사 주변에는 경찰 1000여 명과 한 위원장 체포 영장 집행을 요구하는 시위대, 영장 집행에 저항하는 민노총 조합원 등이 뒤엉켜 극도의 혼란이 빚어졌다. 영장 강제 집행으로 자칫 일어났을지 모를 충돌과 불상사를 피할 수 있게 돼 일단 다행이다.

이제 한 위원장 거취 문제는 조계종에 맡겨졌다. 단순한 범법 혐의자에 불과한 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은 결국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이 직접 나서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처음 자리 잡을 때 조계종에서 그가 실정법을 어긴 범죄자란 인식에 따라 처리를 분명히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계종은 1980년 '불교 정화'를 명분으로 내건 신군부 세력에 전국 사찰이 유린되는 불행한 일을 겪었다. 이때의 참담한 기억 때문에 공권력의 사찰 진입에 대한 거부반응이 뿌리 깊다. 그러나 한 위원장에 대한 영장 집행은 부당한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기 위해 명분 없이 사찰을 짓밟았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위원장은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 영장과 구속 영장이 발부돼 있는 상태다. 지난달 14일 광화문 난동 시위를 주도하며 "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선동했다. 조계사에 도망간 뒤에도 SNS를 통해 여러 차례 민노총 정치 투쟁에 대한 지침을 내리는 등 국민과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 이런 범법자를 붙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을 '불교를 짓밟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을 보호했던 조계종도 조롱했다. "5일이나 6일 경찰에 자진 출두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노동 개악(改惡)을 막아야 한다"는 핑계로 말을 뒤집었다. 한때는 "부처님 자비심으로 보듬어달라"고 했다가 퇴거 압력이 거세지자 '요즘은 (조계종이) 권력의 눈칫밥을 드신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사람을 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불자(佛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이 한 위원장의 어처구니없는 은신을 25일이나 참은 것은 조계사가 종교 시설이기 때문이었다. 자승 총무원장이 말한 '거취 해결'이 정확히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긴 하다. 조계종이 한 위원장을 제 발로 나오도록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끝내 불응할 때는 최소한 경찰이 체포하는 것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

조계종과 경찰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는 지금 한 위원장과 민노총이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다. 자칫 잘못되면 공권력이 불교를 압박하는 구도가 되면서 민노총은 뒤로 빠지고 상황은 엉뚱하게 불교와 경찰이 다투는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 위원장을 붙잡아 공권력을 바로 세워야 하지만, 경찰은 사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혜롭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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