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직접 보고 만지시라고

조선일보
입력 2015.12.08 03:00 | 수정 2015.12.08 09:20

[오프라인 진출하는 온라인 기업]

아마존, 오프라인 서점 열어… 네이버·카카오는 캐릭터숍 인기
직접 보고 만나는 기회 제공해 브랜드 개성 직관적으로 전달

지난 5일 오후 3시. 대학생 박채정(23)씨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라인프렌즈' 매장에 줄을 섰다. 라인 캐릭터 인형 '브라운'과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라인은 카카오톡 같은 네이버의 메신저 서비스. 앞에 줄 서 있던 열댓 명이 차례로 찍고 난 뒤, 박씨는 브라운의 얼굴을 쓰다듬고 인형의 팔에 폭 안겼다. "캐릭터들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귀엽다. 친구들에게 라인 메신저를 깔아서 같이 쓰자고 할 것"이라는 그는 이날 브라운 인형을 안고 매장을 나섰다. 이 인형은 지금까지 20만개가 팔렸다.

더 느리고 불편하지만 더 따뜻하다. 온라인 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서 설 자리를 찾고 있다. 기업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매장을 접고 온라인으로 달려가는 마당에 온라인 매장이 오프라인으로 건너온다. 역행(逆行)의 이유는 소비자에게 보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무형(無形)에 가까운 가상의 온라인이 온기 감도는 '육체'를 갖춰가는 것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라인프렌즈’ 매장 앞에서 고객들이 대형 ‘브라운’ 인형과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라인프렌즈’ 매장 앞에서 고객들이 대형 ‘브라운’ 인형과 사진을 찍고 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3일 미국 시애틀의 한 쇼핑몰에 아마존이 '아마존 북스'라는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다. e북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회사로 성장한 아마존은 기존 오프라인 상점들을 궁지에 몬 주범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아마존 북스'가 입주한 쇼핑몰은 아마존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던 프랜차이즈 서점 '반스앤드노블'이 있던 곳이다.

인터넷 검색엔진 최강자인 구글은 지난 3월 런던에 '구글숍'을 열었다. 구글에서 내놓은 안드로이드폰과 태블릿, 크롬캐스트 TV 등을 판매하지만, 판매보다는 체험을 더 강조한 매장이다. 구글 영국의 마케팅 담당자 제임스 엘리아스는 "구글의 모든 것을 갖고 놀고, 체험하고,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생활을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도 자사 메신저에서 인기가 많은 캐릭터를 다양한 형태로 현실 세계에 진출시켰다. '라인프렌즈' '카카오프렌즈' 등의 매장에서 인형과 공책, 펜, 티셔츠, 빵, 케이크 등을 직접 팔고 즐기게 한다. 라인프렌즈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동남아 등에 1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미국까지 진출하면서 온라인 의류 쇼핑몰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스타일난다'도 홍대, 잠실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매장을 냈다. 온라인 기업의 성공 비결은 소비자들이 재화나 서비스를 빠르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기업은 매장 임차료나 유통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버, 다음카카오와 스타일난다는 온라인에서 지불하지 않아도 됐던 비용을 써가면서 오프라인으로 진출한 셈이다.

아마존이 지난달 3일 미국 시애틀에 문을 연 서점 아마존 북스 사진
아마존이 지난달 3일 미국 시애틀에 문을 연 서점 아마존 북스. /아마존 제공
아마존은 아마존 북스를 가리켜 '아마존 닷컴의 물리적 확장(physical extension of Amazon.com)'이라고 표현했다. 아마존 북스에서 파는 책의 종류와 수량은 아마존 닷컴의 그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소비자들은 이곳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고, 저자와의 대화 같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아마존 닷컴보다 불편하지만, 더 따뜻하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아무리 온라인과 SNS 마케팅이 유행한다고 해도 브랜드의 이미지와 개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의 분위기, 디자인, 직원이다. 아마존 북스와 구글숍은 물건 판매보다 소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면서 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작년에 국내 개봉한 미국 영화 '그녀(Her)'의 주인공 시어도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서맨사와 사랑에 빠진다. 서맨사는 달콤한 목소리와 유머 감각, 지성을 모두 갖춘 완벽한 연인. 하지만 시어도어는 '그녀'의 냄새를 맡을 수도, 살결을 쓰다듬을 수도 없다. 이들의 사랑은 결국 끝을 맺지 못한다. 한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현실 공간에서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 아마존이나 네이버처럼 온라인 강자(强者)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그녀'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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