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본-프리세대'를 '체인지메이커'로

  •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

    입력 : 2015.12.08 03:00

    [특별기고]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
    지난 10월 말, 난생처음 아프리카 대륙을 방문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글로벌 사회혁신 조직인 아쇼카(Ashoka)가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아쇼카는 남아공의 악명 높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 철폐된 1994년 이후, 남아공에서만 100명이 넘는 사회혁신 기업가들을 '펠로(Fellow)'로 선정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총 8개의 '체인지메이커 학교(Changemaker School)'도 발굴해 선정 및 지원해 왔다. 이 중 일부가 남아공의 심각한 교육 불평등과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체인지메이커 학교로 선정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부터, 위기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파도타기(서핑)'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해결하는 30대 젊은 사회혁신 기업가, 교사직을 뒤로하고 남아공 청소년들의 역량 강화에 투자하는 50대 벤처회사 CEO 등 다양한 세대의 주체들이 모였다. 이들은 남아공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체인지메이커 학교들 간의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펠로 조직과 체인지메이커 학교들이 MOU를 체결해 사회와 학교의 자원을 적극 연계하기로 하는 등 눈에 띄는 진전을 이뤘다.

    그와 비슷한 시기,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떨어진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선 40년 만에 대규모의 대학생 거리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흑인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내려라(Fees Must Fall)'는 구호를 내걸고 화염 시위를 벌이고, 의회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남아공의 점점 심화되는 양극화와 대학 교육 시스템의 불평등이 발단이었다.

    이 상황을 다룬 서양의 한 언론은 "남아공의 '본-프리 세대(Born-free Generation)'가 결국 신화에 불과했다"고 꼬집어 말했다. '본-프리 세대'란 194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가 종식되고,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1994년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말한다. 20여 년이 흘러 성인이 된 그들이 남아공 사회의 여전한 사회적 갈등과 상처를 반복해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란 제도는 사라졌지만 당시 흑인 및 유색인종을 도시로부터 멀리 격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주거지 '타운십(Township)'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쇼카의 행사 참가자들은 "현재 남아공 청소년들의 삼분의 일이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 "'타운십'에 사는 가난한 대학생들은 새벽 3시에 집을 나와야 겨우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등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체인지메이커 학교인 선 밸리(Sun Valley) 초등학교의 학생 대표인 한 흑인 소년은 "정신적, 감정적인 안정감 없이, 어떻게 우리가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반문했고, 또 다른 체인지메이커 학교의 교사는 "학교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숨기지 않고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10년 넘게 OECD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 사회. 우리나라의 청소년들도 가슴속에 사회적 갈등과 트라우마를 담은 채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3년 전 아쇼카 한국이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사회혁신 기업가 7명이 아쇼카 펠로로 선정됐다. 그중 무려 5명이 청소년 및 교육 관련 혁신 활동을 하고 있고, 다른 2명 역시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내년부턴 한국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초·중·고등학교를 체인지메이커 학교로 선정해, 더 많은 학교가 공감 능력과 변화창조 능력을 국어 및 수학 못지않게 가르치고 수평적인 의사결정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공감 능력이야말로 새로운 미래를 여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본-프리 세대'를 넘어 '체인지메이커 세대'를 길러내는 패러다임 전환이 남아공을 넘어 한국에서도 시작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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