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후회의 첫날인 지난달 30일 BBC에 베이징(北京) 거리가 등장했다. BBC 베이징 특파원이 짙은 스모그 속에서 초미세 먼지(PM2.5) 측정기를 켰다. 600이 넘는 수치가 나왔다. 내가 머물고 있는 중국 남부 도시 샤먼(廈門)이나 또는 서울 오염도의 10배 수준이다. BBC 특파원은 이어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치 100이 나왔다. 공기 청정기를 켜놓고 있어서다. 그날 베이징 최고 수치가 1000 가까이 치솟았다.
파리 회의에서 그런대로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올 거라는 시각이 많다. 온실가스 1위 배출국인 중국(세계 28% 배출)과 2위 배출국 미국(15%)이 선도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파리 회의 연설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인류 공동의 임무"라고 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후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적극적 태도로 변한 이유는 인류 전체, 또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도 있지만 당장 자국민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할 것이다.
오바마는 지난 6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틀 전 박 대통령이 예정됐던 미국 방문(6월 14~18일)을 메르스를 이유로 연기한 데 대해 "(메르스와 관련해)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위로했다. 오바마는 이어 "한국이 (파리 회의에) 최대한 야심 찬 목표를 내놔 리더십을 발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맥락에 맞지 않는 주문이었다. 하루 전인 11일 한국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아무 대책이 없을 경우(BAU) 대비 최대 31% 감축'으로 발표하자 불편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즈음 성김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주미 한국 대사관에 '엄청 실망했다(super disappointed)'고 전달했다고 한다. 그 얼마 후 정부는 'BAU에서 37% 삭감'으로 목표치를 올려놨다.
그랬어도 한국은 우호적 평가 대상이 아니다. 국제적 영향력이 있는 영국의 환경 저널리스트 프레드 피어스는 파리 회의 개막일 기사에서 '한국의 2030년 배출 목표는 1990년 배출치의 두 배'라면서 우리를 러시아·캐나다와 함께 '이론의 여지 없는 악동(undisputed bad boy)'으로 꼽았다. 러시아·캐나다는 온난화가 되면 되레 이득 볼 가능성이 큰 나라이다. 소극적인 게 당연하다. 우리가 그런 나라와 나란히 '불량아' 소리를 듣고 있다.
파리 회의의 핵심 쟁점은 ①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재정 지원 규모와 방법 ②개도국의 실천 내용에 대한 투명한 검증 두 가지다. 온실가스는 배출되면 즉각 지구 전체로 퍼지는 확산성(擴散性), 대기 중에 누적돼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축적성(蓄積性), 피해 형태·강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不確實性)이란 특성이 있다. 그간 선진국 그룹이 배출해놓은 온실가스는 장기간 지속적 피해를 주게 된다. 피해는 개도국에 집중될 것이다. 선진국은 가해자(加害者) 처지이면서 피해 회피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 결국 파리 회의 의제를 요약하면 '수십~수백 년 뒤 아프리카나 동남아 후진국에 집중될, 피해의 절박성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은 중대 비극을 막기 위해 모든 나라가 지금부터 화석연료를 덜 쓰기로 한다. 대신 선진국은 개도국의 대응과 피해 복구를 돕자'는 것이 된다. 쉬운 합의가 아니다.
파리 회의에서 만일 ‘각국 실천 내용을 투명하게 검증하면서 주기적으로 목표치를 높여가자’는 원칙이 선다면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엔 미국이 한국에 했던 것과 같은 각개격파, 또는 국제 여론의 압박 같은 것이 다자(多者)간에 상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파리 회의는 2주 회의로 끝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길게 전개될 마라톤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