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가 딸의 출생을 축하하며 보유 지분(환산 가치 52조원)의 99%를 기부해 자선 법인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사회 공헌 경쟁이 더욱 불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갑부들과 대기업의 연쇄 사회 공헌을 이끌어내고,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워런 버핏(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등 기존 '기부왕' 집안의 경쟁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전염'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에서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가 당시로는 천문학적 액수인 2500만달러를 출연해 재단을 만든 이래 '성공한 기업가는 번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미국 기업의 불문율이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 기업 CEO들의 사회 공헌 협의체인 CECP와 경제 조사 기관 콘퍼런스 보드가 지난 6월 펴낸 '숫자로 본 2015년 기업 사회 공헌'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대기업 271곳의 56%가 2012~2014년 사회 공헌에 투입한 금액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CECP는 "세계적 대기업일수록 사회 공헌에 힘을 쏟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저커버그에 하루 앞서 글로벌 호텔 재벌 힐튼가의 창업주 콘래드가 1944년 설립한 힐튼 재단은 세계 에이즈의 날인 지난 1일 에이즈 발병률이 높은 남부 아프리카 지역 감염 어린이들의 생활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엔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 재단이 미국 중심으로 진행해 오던 사회 공헌 활동의 영역을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해 유명 컨설팅 전문가를 담당 이사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분석은 순위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 분석 기관인 파운데이션 센터가 자산 규모 기준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겨 본 결과 성공한 창업가들이 최상위권에 집중 포진됐다. 1위는 알려진 대로 MS의 창업자와 아내의 이름을 따서 2000년 설립된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으로 규모만 413억달러(약 48조979억원)이고, 2위는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이 사재를 출연해 1936년 설립한 포드 재단(122억달러)이다. '세계 벤처 기업 1호'로도 알려진 컴퓨터 회사 휼렛 패커드의 공동 창업자 가문에서 세운 '윌리엄-플로라 휼렛 재단(101억달러)'과 '데이비드-루실 패커드 재단(69억달러)'은 각각 5위와 8위에 올랐다.
창업 가문이 설립한 이런 재단들은 약속이나 한 듯 활동 영역을 아프리카·중동·동남아시아·남미 등 빈곤 지역으로 넓혀가고 있다.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이라고 이름 붙인 게이츠재단의 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증산·기아 퇴치 사업, 포드 재단이 남아시아지역에서 진행한 여성 자립 지원 프로젝트, 하워드 버핏 재단이 부족 갈등이 심각한 중부 아프리카에서 지원한 평화 정착 활동 등은 실제로 현지 정세의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하워드 버핏이 르완다에서 진행하는 농지 토질 개선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를 '갈색 혁명'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컨설팅 기업 올리버와이만의 신우석 상무는 "기업들이 어느 정도 부를 쌓게 되면 사회 환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며 "여기에다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경영진 고민까지 작용하면서 기업 경영에서 사회 공헌 영역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