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있는 해수 담수화 시설 '해양정수센터'. 센터에 들어서자 '슈우욱'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센터에서 330m 떨어진 수심 10m의 바다에서 빨아들인 바닷물이 부유물·찌꺼기·세균 등을 거른 뒤 지하 터널을 거쳐 센터로 들어오는 소리였다. 이 물은 다시 센터 내 각종 여과 장치를 통과하면서 바이러스 등 분자 단위 미세 물질이 제거되고, 최종적으로 각종 미네랄을 투입해 수돗물로 만든다.
이 센터는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과 광주과학기술원, 부산시, 두산중공업 등이 1954억원의 정부 예산을 들여 지은 것으로 작년 9월 완공했다. 기장군 앞바다의 바닷물을 취수해 하루 4만5000t의 담수(淡水)를 만들고, 이를 인근 기장군 기장·장안읍과 일광면, 해운대구 송정동 지역 주민들에게 수돗물로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두산중공업 안호걸 소장은 "국내 첫 해수 담수화 시설로 단일 시설 기준 담수 생산량은 세계 최대"라고 말했다.
이 센터는 지구촌 물 부족 시대를 맞아 국가 차원에서 첨단 해수 담수화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 오염 사고 위험성이 높고 수질이 좋지 않은 낙동강 물 대신에 양질의 대체 수돗물을 확보하겠다는 목적도 있다. 충남·인천·창원·강릉 등 물이 부족한 다른 지역도 이 센터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센터는 당초 수돗물 공급을 시작하기로 한 작년 12월 이후 1년여 동안 본격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일부 주민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취수원이 고리 원전에서 11.3㎞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돗물 공급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센터는 시설 유지를 위해 매월 3~5차례 가동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수돗물 공급을 못 하는 상황에서도 시험 가동은 계속하고 있다. 이날도 오전 9시부터 24시간 시험 가동을 해 만든 3만5000여t의 수돗물을 그대로 버렸다. 이렇게 시험 가동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월 5억원으로 지금까지 60억원가량을 허공으로 날렸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1년간 미국국제위생재단(NSF)과 한국원자력연구원·부경대·부산시상수도본부 수질연구소 등에 80차례에 걸쳐 바닷물 원수와 생산된 해수 담수의 수질 검사를 의뢰해 '식수 적합 판정'을 받았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수질검증연합위도 지난달 27일 '적합하다'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상수도본부 측은 "해수 담수 수돗물에선 72종의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고 수돗물 질도 낙동강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주민 설명회와 공청회도 20여 차례나 열었고, 원전 10㎞ 내 취수정 6곳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수장 등의 사례도 제시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장읍과 부산 송정동 등지에는 '우리는 마루타·실험쥐가 아니다' '주민이 반대하는 해수 담수 공급은 곧 전쟁이다' 등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한 주민은 "원전 인근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 식수로 공급하는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은 지난달 두 차례 성명서를 내고 "안전 보장이 안 된 식수 공급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기장군도 3일 자료를 내고 "과학적 근거 못지않게 주민 공감대도 중요한 만큼 주민 동의 없는 공급을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찬성 주민들은 과학적 판단을 신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질검증연합위 위원으로 활동한 주민 이동일(67)씨는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다면 기장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미역, 멸치, 다시마 같은 해산물은 어떻게 먹느냐"며 "주민 대표가 직접 참여해 나온 수질 검증 결과도 못 믿겠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