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22)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거둔 5승을 모두 마지막 날 뒤집기로 얻어 '역전의 여왕'으로 통했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데뷔한 뒤로는 팬들로부터 '드라마 작가'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극적인 승부 끝에 우승한다고 해서 붙은 애칭이다. 박인비(27)와 맞붙은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 연장전을 끝내버린 154야드 이글샷은 27일 LPGA 투어로부터 '올해의 샷'에 선정되기도 했다.
LPGA 투어 시즌 3승, 상금 랭킹 4위, 신인상 수상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기적의 골퍼' 김세영을 27일 부산 기장군 베이사이드 골프장(파72·6232야드)에서 만났다. LPGA와 KLPGA 투어의 상금 랭킹 상위 한국 선수들이 출전하는 '챔피언스 트로피 2015' 대회 1라운드를 마치고 나온 뒤였다. 김세영은 "그 이글샷이 워낙 해내기 어려운 '인생샷'이어서 '올해의 샷'이 될 거라고 기대했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 자주 일어나는지 저도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걸 즐기는 성격인가 봐요. 인비 언니도 저에게 '너는 기적을 몰고다니는 선수야'라고 했는데 그게 딱 맞는 것 같아요. 하하."
챔피언스 트로피 첫날 포볼 매치에서 김세영은 최운정(25)과 함께 LPGA팀의 다섯째 조로 나서 KLPGA팀 박성현(22), 안신애(25) 조와 대결했다. 김세영은 추운 날씨에도 구름 관중을 몰고다니며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 올 시즌 미LPGA 투어 한국 선수 중 최고 비거리(263.02야드·LPGA 투어 10위)를 자랑하는 김세영은 호쾌한 장타쇼를 펼치며 갤러리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김세영은 함께 플레이한 선수 4명 중 키가 가장 작았지만, 때때로 드라이브샷을 다른 선수보다 10야드는 더 멀리 보냈다.
자연스럽게 이날 박성현과의 장타 대결에도 눈길이 쏠렸다. 티샷 거리는 김세영이 박성현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갔다. 김세영은 혼자 이글 1개, 버디 3개(보기 1개)를 기록했지만, 최종 스코어에선 박성현이 버디 7개로 활약한 KLPGA팀과 무승부를 이뤘다. 그는 "박성현이 미국의 렉시 톰슨 못지않은 장타자라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쳤다"며 "2라운드에서 또 만나는데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영은 올해 통역 없이 영어 인터뷰를 소화해 미국 진출을 앞두고 영어 고민에 빠진 한국 선수들에게 희망을 줬다. 김세영은 "친구들이 짓궂게 '혀에 빠다를 달고 왔냐'거나 '된장영어(콩글리시라는 뜻) 같다'고 놀리기도 한다"며 "하지만 틀린 표현이 나오더라도 자신 있게 말하다 보니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김세영의 내년 목표는 리우올림픽 출전이다. 국가당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어 한국은 '내부 경쟁'이 더 치열하다. 김세영은 현재 박인비(2위), 유소연(5위)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셋째인 7위까지 올라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세영은 "올해 성적은 내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인데 랭킹까지 많이 올라 꿈만 같다"며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들쭉날쭉한 플레이부터 줄여야겠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대회 최종일마다 빨간 바지를 입고 나선다. 빨간 바지를 입고 우승을 자주 해 생긴 좋은 징크스다. 마지막 날 빨간 바지를 입고 나올 거냐고 묻자 "일단 준비는 해왔어요. 인생 모르는 거니까요. 호호"라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의 주역이 되고 싶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