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26일 영결식장 근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호남 지역구 의원 20여명이 모였다. 참석자 상당수가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총선이 어렵다며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으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다. 27일에는 문 대표를 지원하는 초·재선 의원 수십 명이 이른바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를 안철수 의원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고질적 계파 싸움, 낯 뜨거운 공천 싸움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새정치연합은 올 2월 문 대표를 선출한 이후 반짝하다가 4월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지리멸렬 그 자체다. 제1 야당으로서의 수권(受權) 비전이나 현안 해결 능력은 고사하고 제 몸도 하나 변변하게 건사하지 못하는 처지다.

정기국회는 원래 '야당 잔치'라고 할 만큼 야당이 정부의 정책 실패를 추궁해 야당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민은 야당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가운데 문제가 있는 대목을 집어내 깎고 다듬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그러기는커녕 수출 기업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한·중 FTA 비준안을 막판까지 붙잡고 있다. 폭력 난동 시위에 대해서도 과잉 진압이라고만 할 뿐 법질서가 무너져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 지적도 하지 않고 있다. 말로는 안보(安保) 정당을 내세우면서 테러방지법이나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막아설 기세다. 그렇다고 남북 관계나 한·중 관계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다.

최근 국민 눈앞에 펼쳐진 야당의 풍경들은 대부분 집안 싸움뿐이다. 국민은 도대체 무엇을 놓고 이렇게 질기고도 지루한 싸움을 벌이는지 잘 알지 못한다. 지도부는 지도부대로 당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고, 의원과 당원들은 온갖 극언(極言)을 써가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계파 싸움이 먼저인지 무능과 무책임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싸움들 모두가 야당의 진짜 모습으로 국민 망막(網膜)에 또렷이 각인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2012년 총선을 3~4개월 앞둔 시점의 정당 지지율이 새누리당과 비슷하거나 조금 앞섰다. 그러고도 정작 총선에서는 상당한 차이로 패배했다. 요즘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총선에서 대패(大敗)할 것이라는 경고라고 봐야 한다.

야당이 이렇게 무기력 상태에 빠지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국정 현안에 대한 결정이 지연되거나 아예 결정도 못하는 정체(停滯)의 수렁에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민이 야당을 걱정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야당 자체를 걱정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야당 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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