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현지 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가 자국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이슬람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합 전선'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 특히 IS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결국 IS 격퇴가 늦어지면서, 전 세계의 테러 공포도 지속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 "러시아는 IS가 아니라 시리아 내 온건 반군을 공격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외톨이(outlier)"라고 말했다. '파리 연쇄 테러' 이후 IS 격퇴를 목표로 한 다국적 연합군을 구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였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프랑스가 IS뿐 아니라 러시아를 상대로 새로운 전선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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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가 IS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것은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미국은 IS 격퇴전을 펼치면서 아버지 때부터 45년째 시리아를 통치하는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함께 축출하는 것이 목표다. 알 아사드가 수십만명을 대량 학살하면서 대규모 난민을 유발해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 내 IS를 격퇴하기 위해선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군사 기지를 가지고 있으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알 아사드 정권을 활용하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 간 충돌은 러시아가 IS뿐만 아니라 알 아사드 정권 보호를 위해 온건 반군(叛軍)까지 공격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24일 격추된 러시아 전투기도 터키 접경 지역에 있는 투르크멘족(族) 반군을 공습 중이었다. 서방은 IS와 알 아사드 정권을 동시에 축출하기 위해 반군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번 러시아 전투기 격추로 국제사회는 친(親)러시아와 친미(親美) 진영으로 확실하게 갈리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65개국이 연대하고 있지만, 알 아사드를 지지하는 것은 러시아와 이란 2개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도 "러시아 전투기가 온건 반군을 공격하면서 계속해서 터키 영공을 침범하고 있다"며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도 "우리는 터키와 연대하고 있으며, NATO 동맹국의 영토적 통합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터키가 친구의 등에 칼을 꽂았다. NATO가 IS 편에 서려는 것 같다"며 맹비난했다.

'파리 연쇄 테러' 후 대(對)IS 연합군을 구성하겠다는 프랑스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올랑드는 26일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러시아의 지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와 미국은 지난 9월 IS의 러시아 여객기 테러 이후 러시아가 IS 격퇴를 최우선 순위에 놓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제 이를 설득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시리아 사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반군을 지원하기 위한 소규모 특수부대를 시리아에 파견했다. 러시아 지상군도 최근 IS와 반군을 상대로 한 전투를 시작했다. 현재처럼 양측이 군사 작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한 우발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이번 러시아 전투기 격추로 촉발된 갈등을 서둘러 봉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으로선 테러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선 IS를 조기에 격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러시아로서도 알 아사드 정권을 보호하려면 IS를 축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러시아는 터키에 강력한 대응을 선언했지만 현재 군사적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가 서방과 더 이상 갈등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