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들이 생화학무기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영국 정부는 23일 발표한 '국방·안보 전략 보고서'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알 카에다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생화학무기와 핵 공격을 시도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국제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미국 측 대표는 "시리아 내전에서 생화학무기 사용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도 "IS가 생화학무기를 동원해 테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이른바 '소프트 타깃'으로 불리는 대규모 민간인을 노린다는 점에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생화학무기 테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정부는 오는 30일 파리에서 개막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때 상수도를 겨냥한 생화학테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관련 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중동·아프리카의 화학무기 보유국과 해당 지역의 이슬람 테러단체

IS가 생화학무기 테러를 시도하는 정황들도 포착되고 있다. 벨기에 경찰은 '파리 연쇄 테러' 용의자들의 근거지였던 브뤼셀 인근 몰렌베크에서 화학무기 제조에 쓰는 화학품을 대량 발견했다. 또 파리 시내 대형 병원에서 방호복과 마스크 등이 대량 도난당해, 경찰이 IS의 생화학무기 공격과 연관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최근 압수된 IS 조직원의 노트북에서 페스트(흑사병) 균을 이용한 생화학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발견된 적도 있다.

서방은 IS가 이미 생화학무기를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최근 "지난 8월 시리아 북부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실상 IS를 사용 주체로 지목했다. 구체적인 증언도 나오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지난 6월 쿠르드족 점령 지역에 IS가 '염소 독가스' 로켓포를 발사했다"며 "당시 IS 조직원들이 방독면을 착용한 것을 보면, 화학전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IS뿐만 아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IS와 테러 경쟁을 벌이는 알 카에다도 화학무기 개발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알 카에다는 2001년 9·11 테러 이전부터 화학무기 개발을 시도해 왔으며, 미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러시아·시리아·이라크·리비아·이집트 등에 남아 있는 화학무기와 방사능물질 등 대량 살상 무기가 이슬람 극단주의자 수중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몰도바 보안당국은 중동의 급진세력에 방사능물질을 팔려던 러시아 조직폭력단을 지난 5년 동안 네 차례나 적발했다.

서방이 특히 긴장하는 것은 IS의 생화학무기 개발 능력이다. 생화학무기는 비밀리에 무기 실험을 할 만한 장소가 필요하고, 매우 전문적인 분야라는 점에서 테러 단체들이 개발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IS는 시리아·이라크에 상당한 영토를 확보하고 있어 무기 실험이 가능하다. AP통신은 "IS가 이라크·시리아·체첸 출신 과학자들로 구성된 별도 조직을 만들어 화학무기 개발을 적극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IS의 생화학무기 테러 시도가 공식 확인된다면, IS와의 테러 전쟁은 확전이 불가피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 라인(red line·한계선)'으로 삼는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결국 오바마로서도 더 이상 지상군 투입을 미루기 어려워지면서, 시리아에서 IS 격퇴를 위한 대규모 지상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