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23일 중·고 국정(國定) 역사 교과서 집필진 구성을 완료했다. 공모를 통해 뽑은 필자는 17명, 국편이 초빙한 필자는 30명이다. 그러나 국편은 이날 발표문에서 47명이 누구인지, 이들의 학문적 이력이 어떤지, 소속된 기관·학교가 어디인지 일절 밝히지 않았다.
검정(檢定) 교과서들의 경우 국민들은 편찬 단계에서 필자가 누구인지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정부가 워낙 뜨거운 논란 속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데다, 국정화의 성패(成敗)는 결국 최고의 필진으로 최상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내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집필진 구성을 궁금해한 것은 그 면면을 통해 교과서의 앞날을 내다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편이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교과서가 어떻게 편찬될까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아무것도 없게 됐다. 깜깜이 편찬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이는 정부가 당초 약속한 교과서 편찬의 '투명성'과도 어긋난 결정이다.
국편이 교과서 필자의 신상을 밝히지 않기로 한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결정되기 전부터 역사학계에서는 대학별, 학회별로 집단적인'집필 거부' 선언이 잇따랐다. 몇몇 역사학자가 대표 집필자로 거론되자 이번엔 '어용' '곡학아세' '역사 왜곡 부역자' 같은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에선 집필진 구성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교과서 집필자가 신변을 걱정하는 나라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국편이 실력 있는 집필자를 모시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집필진 미공개가 혹시 필자들에 대한 평가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면 더 큰 문제다. 국편은 집필자 수가 검정 교과서의 세 배 가까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교과서의 질은 집필자 숫자에 좌우되지 않는다. 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편과 필자들이 비상한 노력을 통해 익명 편찬의 약점을 만회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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