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남과 같은 건 싫다, 패션의 완성은 '나'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5.11.23 03:00

    ['패완나']

    스티커·패치 등 이용해 나만의 가방·옷 꾸미기 인기
    운동화 색·문구까지 지정 개인 맞춤형 상품도 출시

    회사원 김세현(32)씨는 얼마 전 해외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보다가 한 외국인 여성이 들고 있던 가방에 눈길이 꽂혔다. 커다란 가죽 가방에 어지럽게 새겨 놓은 말풍선과 캐릭터. 무심하고도 발랄했다. 김씨는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 해외 직구 사이트까지 다 뒤졌지만 그 가방을 구할 수 없었다. 한참 후 국내의 한 패션 매장에서 그는 왜 그 가방을 구할 수 없었는지 깨달았다. 매장에서 팔고 있던 것은 가방이 아니라 가방에 붙어 있던 말풍선과 캐릭터 스티커. 사진 속 여성은 영국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가 만든 스티커를 사다가 가방에 붙여서 '나만의 가방'을 만든 것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혹은 몸매)' 일명 '패완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요즘은 '패션의 완성은 나'인 '패완나'의 시대다. 개인의 취향이 워낙 세분화된 '1인 1취향' 시대에 미완(未完)의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상품의 마무리를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담당하는 것이다.

    아디다스는 올해부터 '마이(mi) 아디다스'라는 온라인 커스터마이징(맞춤) 서비스를 시작했다. '슈퍼스타'나 '스탠스미스'처럼 70~80년대 나온 제품이 10~30대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같은 운동화를 신더라도 남들과는 다른 디자인을 신고 싶은 소비자들 때문에 맞춤형 상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운동화 바탕색부터 아디다스의 고유 문양인 '삼선(三線)'과 운동화 줄까지 색을 지정할 수 있다. 로고가 들어가는 자리에는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다. 스타워즈 마니아들은 스타워즈 캐릭터까지 운동화에 반영할 수 있다. 희소한 제품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한정판'을 넘어서서 아예 세상에 한 켤레밖에 없는 운동화를 내놓은 것이다.

    명품 브랜드인 프로엔자 스쿨러도 취향에 따라 가방을 꾸밀 수 있는 'PS핀 컬렉션' 가방을 내놨다. 가방에 뚫려 있는 구멍에 글자나 숫자로 된 핀을 꽂는 방식이다. 브랜드 로고 대신 가방 주인의 이름이나 좋아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다. 프로엔자 스쿨러를 수입한 신세계 인터내셔날 측은 "고객들이 기존 가방에 스티커, 참(장식물), 페인팅 등을 활용해 각자 개성대로 맞춤 디자인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길거리 패션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다. 와펜 패치(천에 박음질이나 다리미로 붙이는 장식), 의류용 열 스티커를 파는 온·오프라인 상점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와펜, 스티커, 패치 등을 파는 '패치매니아' 측은 "이들의 수요는 유럽의 문장(紋章)부터 최신 애니메이션 캐릭터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연예인이 하고 나온 액세서리나 옷차림이 길거리를 휩쓸었다. '김희선 머리핀' '김남주 립스틱' 등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면 10대부터 40대까지 여성들은 같은 것을 하고 다녔다. 지금도 여전히 연예인 마케팅이 효력을 얻고 있지만, 연예인 이름을 붙인 '○○ 스타일'이 유행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예전에는 '남과 다를까' 걱정했다면, 지금은 '남과 같을까' 고민이다. 남과 똑같은 것을 살 바에야 스스로 만드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최근 미국 광고회사 바클리의 제프 프롬 부사장은 보스턴컨설팅그룹, 서비스매니지먼트그룹과 함께 밀레니얼 세대 소비 성향과 트렌드를 공동 분석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팔아라'라는 책을 내놨다. 이들은 세계 소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10대 후반~30대 후반을 '밀레니얼 세대'로 규정했다.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브랜드와 상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맥도널드에서 최근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시그니처 버거'를 선보인 건 밀레니얼 세대를 고객으로 맞게 된 브랜드의 기본자세다. 이 세대가 남과 다른 것, 나만의 것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뭘까. 이미 기성품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연기처럼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붙잡아보려는 최후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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