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 있는 척… 당신도 그런가요?

조선일보
입력 2015.11.21 03:00

[성공 추구하는 'big me'보다… 내적 성장 추구하는 'little me'의 가치 회복 필요]

NYT 칼럼니스트 브룩스, 성공에만 방점 둔 세태 비판
"우리의 삶은 성장의 이야기… 자기 과잉에 집중하기보다 절제하며 스스로 단련해야"

인간의 품격
인간의 품격|데이비드 브룩스 지음|김희정 옮김|부키|496쪽|1만6500원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을 위해 산다. 오만은 모든 악의 중심에 있다. 인격은 자신의 결함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무슨 공자님 말씀, 윤리 교과서 낭독 같지 않은가. 개인 하나하나가 각각의 우주라고 믿을 만큼 스스로를 부풀리는 현대인 입장에서는 '배부른 시대착오'라고 불평할 만한 경구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데이비드 브룩스(Brooks·54·작은 사진)라면 어떨까.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귀족인 '보보스'(부르주아 보헤미안) 개념을 벌써 15년 전에 유행시킬 만큼 누구보다 트렌드에 예민했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발언이라면.

브룩스는 아예 이런 참회록을 쓴다. '나는 얄팍한 성향을 타고났다. 현재 일종의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자기애에 빠진 떠버리가 되어 내 생각들을 마구 쏟아내는 일로 돈을 번다. 그 생각들에 대해 내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 자신감 있는 척하고, 실제보다 더 영리한 척하고, 실제보다 더 권위 있는 척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Road to Character. 번역하면 '인격으로의 여정'이다. 브룩스는 이 험난한 여정에서 분투했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마셜 플랜'의 주인공인 조지 마셜 장군 등 잘 알려진 명사부터 비폭력 인권운동가인 필립 랜돌프와 베이어드 러스틴 등 친숙하지 않은 이름까지 10여명이 넘는 '내적 영웅'들의 약전(略傳)이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펼쳐진다.

데이비드 브룩스
그의 주장은 '아담론(論)'과 '빅미(big me), 리틀미(little me)' 개념에서 좀 더 선명해진다.

우리 마음에는 두 명의 아담이 산다. '아담1'이 성공을 추구하고 야망에 충실한 '나'라면, '아담2'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적 성숙을 추구하는 '나'다. 취업 이력서에 쓸 내용들을 찾느라 혈안이 된 주체가 아담1이라면, 장례식장 조문(弔文)에 걸맞을 담담한 고백의 자아가 아담2다.

없는 재능도 있다고 부풀리는 자기 과잉 시대의 아담1은 이른바 '빅미'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결함을 가진 존재. 이 전통에서는 겸손과 절제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칸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뒤틀린 목재'(crooked timber).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개선시켜야 하는 '리틀 미'인 것이다.

문제는 현대사회가 '아담1'과 '빅미'만 편애하고 '아담2'와 '리틀미'를 홀대했다는 것.

브룩스가 전달하는 '아이젠하워 약전'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핼러윈축제의 이웃집 방문을 금지하자 소년 아이젠하워는 분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가 피범벅이 될 때까지 앞마당 사과나무 둥치를 주먹으로 두들겼다. 후세에 존경받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사실은 분노 조절 장애를 의심받는 불 같은 성미의 소유자라는 것.

아는 척, 있는 척… 당신도 그런가요?
/Getty Images Bank
브룩스는 이 사례를 통해 '죄'와 '인격 수양'의 관계를 설명한다. 요즘 사람들은 죄 혹은 원죄라는 단어를 살찌는 후식을 먹을 때나 떠올리지만, 사실은 자신의 인격 형성을 위해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결점이자 약점이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현대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가. 가령 인간의 사악함에 대해 언급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책임보다는 사회 구조를 탓하지 않는가. 이를테면 불평등, 억압, 인종차별 등 남 탓을 하지 '내 탓이오'는 없다는 것.

야망은 우리로 하여금 새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추동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물질주의적이고 착취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육체적인 갈망은 아이를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불륜으로도 이어진다. 또한 자신감은 대담하고 창조적인 일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자기 숭배와 오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우리는 이미 그런 식의 자기최면에 익숙해져 있다. 죄를 짓고 나서는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 탓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고 '죄'라는 단어를 '실수' '오류' '약점' 등 도덕성과 상관없는 단어로 대체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용감함과 비겁함, 정직과 기만, 연민과 냉정, 신뢰와 배신 사이에서 '내'가 내리는 선택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윤리 선생님으로 돌아온 보보스'가 낯설고 어색한 건 사실이다. 틀린 말이어서가 아니라, 성공한 엘리트의 도덕 강의는 위선과 가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룩스의 실제 삶과 이 책의 유효기간은 연동(連動)되겠지만, '성공'만을 지고지순의 전제로 쏟아져 나오는 이기적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성숙'과 '성장'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고백록의 존재는 소중하다. 브룩스 특유의 박학다식과 아름다운 문체가 주는 쾌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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