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 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이 오는 26일 판문점에서 열린다. 그간 세 차례에 걸친 우리 정부의 회담 제안에 답하지 않던 북측이 20일 실무 접촉을 역제안해 오면서 성사됐다. 당국 회담이 열리면 지난 8·25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사안이 사실상 모두 이행되는 셈이다.
회담 형식과 의제, 시기·장소 등은 미지수지만, 북한이 남북 관계를 당분간 대화 국면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당국 회담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당국 회담에 임하기 전에 북한이 왜 이런 태도 변화를 보이는지 깊은 전략적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의 노선 변화는 경제·외교·안보 등 다방면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북은 지난달 류윈산 중국 상무위원의 방북 이후 중국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핵·미사일 실험은 일단 유예됐고 대남(對南) 도발은 확연하게 줄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문제도 협의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장마당과 대외 교역이 확대되고 건설 붐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집권 초반 '도발과 위협'에서 '대화와 유화' 노선으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김정은은 내년이면 집권 5년 차다. 내년 5월에는 36년 만에 제7차 당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경제적, 외교적 치적을 내보여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은 일단 남북 관계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당국 회담을 정례화한다면 긴장 완화와 교류 확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술 변화를 긍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스스로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는 핵을 순순히 포기할 리가 없다. 핵을 손에 쥔 상태에서 대외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 개발도 하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중국·러시아에 '핵 동결'을 미끼로 경제·외교적 지원을 받아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겐 당국 회담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제재 해제를 요구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이런 속내를 갖고 당국 회담에 나올 경우 섣불리 호응해선 안 된다.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는 적극 논의하되 북핵과 경제 협력 문제에는 뚜렷한 원칙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북이 변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이 단물만 빼먹고 합의를 저버린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의 전술 변화에 대응할 우리의 전략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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