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주먹을 뻗는 이효필은 마치 세상을 향해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돌처럼 단단한 종아리 근육에 우람한 팔뚝…. 올해 57세인 장년 파이터의 몸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로킥(low kick·발로 상대 다리를 공격하는 격투기 기술) 한 방을 맞은 20대 스파링 상대가 다리를 절며 링을 내려갔다.

땀을 뻘뻘 흘리는 57세의 파이터. 그의 근육은 예전 같지 않지만 투쟁심은 그대로다. 샌드백을 노려보는 이효필의 눈매가 무섭다.

한국 격투기 1세대 격인 복서 출신 이효필은 요즘 구슬땀을 흘린다. 그는 오는 21일 서울 강서구 KBS 88체육관에서 열리는 은퇴 경기를 앞두고 있다. 경기 타이틀도 마지막을 뜻하는 '더 라스트(THE LAST)'다. 상대는 자신보다 16년 후배인 종합격투기 선수 김종왕(41)이다. 이효필은 "한때 격투기 전적 13전 13승이었지만 2004년부터 운동을 쉬어 공백이 크다"며 "두 달간 체중을 10㎏ 빼서 현역 때와 같은 90㎏대의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물간 선수의 발악이라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물러나고 싶었습니다."

이효필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복싱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상경해 프로의 길을 가려 했지만 소속팀 계약 문제로 글러브를 벗었다. 22세 때 지인의 소개로 입문한 킥복싱이 새로운 선수 생활의 길을 열어줬다. 국내에 격투기의 개념도 없던 시절에 그는 강력한 로킥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2003년에 동갑내기인 박종팔과 장충체육관에서 대결한 경기는 한국 격투기의 대중화를 알리는 '효시'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 그는 기권승을 거뒀다. 이효필이 뛰었던 입식 격투기(선 채로 타격으로만 하는 격투기)는 UFC 등 그라운드 기술(바닥에 누워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가미한 종합격투기가 등장하며 인기가 시들해졌다. 그는 2004년 이후 링 밖으로 나왔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최근 봉사회를 운영하는 지인과 함께 서울역 앞 노숙자들을 도울 일이 있었습니다. 대기업 회사원, 공무원 등 한때 잘나가던 또래 노숙자들을 봤지요. 고개 숙인 50대 동년배들에게 '우리 인생,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대회는 세계격투기연맹이 주최하지만 대전료는 거의 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최근 3개월 넘게 매일 10㎞ 이상 뛰는 등 하루 3시간 이상 강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이벤트 경기라서 살살 할 것 같죠? 한번 와서 보세요. 50대 선수가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