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 파리 테러 이후 우리나라도 더 이상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18일 "이슬람국가(IS) 등 국제 테러 조직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에 잠재적 테러 위협 인프라가 구축돼 가고 있다"고 했다. IS와 연계되거나 동조하는 이슬람권 외국인 근로자와 내국인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테러는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다. 테러에 대응하는 법적·제도적·사회적 시스템을 하루빨리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올 들어 내국인 10명이 인터넷에서 IS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손모씨 등 2명은 실제 IS에 가담하려고 출국하다 당국에 의해 제지당했다. 국제 테러 단체와 연계되거나 이슬람 극단주의적 이념을 유포하다 적발돼 강제 출국당한 위험인물도 2010년 이후 48명에 이른다. 이 중 한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IS에 가담했다가 전투 중 사망했고, IS 조직을 추종한 다른 인도네시아인은 18일 경찰에 체포됐다.

IS는 올 8월 홍보 잡지를 통해 미국의 IS 격퇴 작전에 참가한 십자군 동맹 62개국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우리를 테러 대상으로 꼽은 것이다. 우리 재외공관 20여 곳은 이미 테러 고위험군(群)에 올라 있다. IS가 카톡에 대화창을 만든 뒤 내부 지령 전달에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인터넷에는 테러 조직이 만든 폭발물 제조법이 다수 떠돌고 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둔형 개인이 이를 활용해 가스 폭파 등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테러 위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시스템은 전무(全無)하다고 할 정도로 미약하다. 여야는 17일 10년 넘게 끌어온 테러방지법안을 처리하자고 했지만, 이제 겨우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다. 공항·원전·항만·철도·터미널과 체육·문화 시설 등은 테러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프랑스는 이번 테러 때 축구 경기장 보안 검색을 통해 사전에 테러범을 적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필리핀 등 상당수 국가는 공공시설뿐 아니라 백화점 등 다중(多衆) 이용 시설에 출입할 때도 검색대에서 보안·안전 검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공공·다중 시설에서 보안 검색은커녕 안전 요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 당국은 테러 예방에 무관심했고, 국민은 콘서트 홀이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검색을 받는 불편을 감수할 마음이 없다.

참혹한 테러를 겪은 뒤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후 대책을 마련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테러 위험인물과 조직에 대한 신상·위치·금융·SNS 정보 등을 파악하고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려면 테러방지법안부터 앞당겨 처리해야 한다. 국정원에 의한 인권 침해나 정치적 사찰 위험이 있다면 독립적 감시 조직 등 보완 장치를 두면 된다. 원전·항공·철도·터미널은 물론 연주회장·경기장 등 공공·다중 시설에 대한 안전·보안을 강화하고, 항공·선박 탑승자 정보 사전 확인 등 다양한 테러 예방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시리아 난민이 200명 넘게 입국하는 상황에서 테러 조직원이 위장 잠입하지 못하도록 치밀한 난민 관리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테러 대응 조치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적잖은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과잉 조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테러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작은 불편은 감내하면서 테러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사회적 합의를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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