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인근 베르사유의 대회의장.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 연설에 나섰다. 그는 "프랑스는 지금 전시(戰時) 상황이다. 결국엔 우리가 테러 집단을 궤멸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승리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도 하나의 연합군으로 맞서 싸우자. 공화국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치며 약 20분간의 연설을 마쳤다. 그 순간 회의장에 있던 900여 의원이 모두 일어나 올랑드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러고 어디선가 시작한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를 모두 합창했다. 좌와 우, 여당과 야당의 구분은 없었다. 일간 르 피가로는 17일 "매우 장엄한 장면이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지난 1월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이어 지난 13일 또다시 연쇄 테러 참사를 겪었다. 테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올랑드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야당으로선 부실한 테러 대응을 지적하며 정부를 매섭게 몰아붙일 '정치적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계에서 이런 모습은 찾기 어렵다. 정파를 떠나 올랑드의 사회당 정부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한 의지를 보여준 연설"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거의 모든 사안에서 대립각을 세워 온 르펜이 올랑드 대통령을 칭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올랑드의 보수화'를 비판해 온 급진좌파당(PRG)도 연설 후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려는 대통령에 지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프랑스 전투기 10대, IS에 대한 3차 공습 감행 ]
프랑스 정계의 이런 움직임은 국가 비상 상황에선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단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때문이다. 약 10개월 동안 IS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풀려난 프랑스 기자 니콜라 에냉은 가디언 기고문에서 "붙잡혀 있는 동안 IS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공습이 아니라 우리들의 단결"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17일 프랑스에 대한 전면적 지원을 만창일치로 결정했다.
대통령도 야당에 손을 내밀었다. 올랑드는 14일 제1 야당 공화당(옛 대중운동연합) 대표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만나 테러 대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르 몽드는 17일 "두 사람이 만나는 데 테러 발생 후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반 시민도 정부의 지시를 따르며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외출 자제령을 내리자, 샹젤리제 거리 인파는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나마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주변 회사원과 관광객이다. 주요 백화점은 지난 14일 오전 문을 열었다가 오후부터 폐점했다. 주말 영업을 자진해서 포기한 것이다. 지금 파리 시내 다중 이용 시설 입구에선 경비원이 입장객의 가방을 샅샅이 뒤진다. 이 때문에 긴 시간 기다려야 하지만, 불평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르 피가로는 지난 14일자 사설에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질서"라며 시민 의식에 호소했다. 테러 직후 시민들은 부상자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 3시간씩 기다려 헌혈했다.
언론도 섣부른 예측이나 비판적 보도를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피해자 인적 사항을 지나치게 드러내거나, 희생자 유족을 대상으로 취재 경쟁을 하지도 않는다. 여론의 쏠림이나 사회의 과잉 반응을 차단하기 위한 언론사의 자체 결정이다.
하지만 이런 자제가 때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시, 경찰은 범인들의 도주 경로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해 후속 테러가 터졌다. 당시 이 문제점을 집요하게 추적한 보도는 없었다. 이번 테러 때는 지난 14일 오전 경찰이 핵심 용의자의 차를 검문하고도 그냥 보내주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아직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