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이른바 친박(親朴) 인사들 사이에서 개헌론이 어지럽게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엔 친박 좌장이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를 거론하며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더니, 12일엔 친박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대통령이 외교·안보, 총리가 내정(內政)을 맡는 권력 구조 내용까지 거론했다. 그는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조합에 대해서도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했다.

이런 얘기가 여권 전체는 물론 친박 진영 내부에서도 정돈된 것 같지는 않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와 다른 친박 인사들이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다"는 식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조차 내년 총선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투로 여운을 남기는 것을 보면 권력 핵심 사이에선 어느 정도 총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현행 헌법 개정 필요성이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현 권력 체제가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극단적 대결 정치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됐다. 17대 국회 때부터 권력 분산형 개헌을 추진하자는 흐름이 있었고, 이번 국회 들어서도 개헌을 추진하는 의원 모임에 과반인 154명이 참여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하느냐였고 바로 이 단계까지 가기도 전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 정권 들어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무성 대표를 포함해 누군가 개헌 얘기를 한마디라도 꺼내면 국정 동력이 상실된다면서 앞장서서 막아왔던 사람들이 바로 친박이다.

그러던 친박 세력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돌연 개헌론을 꺼내는 것을 보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나라가 처한 상황에 무슨 중대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 사이에서는 요즘 친박 진영이 박 대통령 퇴임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교두보를 내년 총선에서 확보하려 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친박 중심의 개헌 주장은 이런 추측을 기정사실로 만들어줄 뿐이다. 더구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름을 들먹이며 권력 구조까지 말하는 것은 친박 정권의 연장선 위에 '들러리 대통령'을 두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한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여권 내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이뤄진 거리나 관계를 두고 '진박(진짜 친박)' '가박(가짜 친박)' 같은 표현이 수십 가지나 난무하고 있다. 대통령이 "심판해달라"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말한 이후 새로 나온 말도 여럿이다.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의 집권 여당에서 공천 기준과 관련해 이런 표현이 나도는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개헌은 국회 내에 특위를 만들어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가면서 시간을 두고 추진해도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권력 주변 몇 사람이 정권 연장용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어가며 무슨 작전 하듯이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권력이 저물 즈음이 되자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친박만 모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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