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2일(현지 시각)부터 사흘간의 영국 공식 방문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총리 취임 후 첫 영국 방문이다. 다자간 정상회의를 제외하고, 인도 총리가 영국을 단독 방문하는 것도 2006년 전임 만모한 싱 이후 약 10년 만이다.
모디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영국에 '기피 인물'이었다. 열혈 힌두교 신자인 모디는 구자라트 주(州)지사 시절이던 2002년 힌두교도가 2만여명의 이슬람교도를 학살한 사건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아, 10년 동안 영국 입국 자체가 불허됐었다. BBC 방송은 "이번엔 영국이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의 모디 총리를 위해 '레드 카펫'을 깔았다"고 보도했다.
모디는 12일 캐머런 총리와 양자 회담을 갖고 의회에서 연설한다. 이때 공군 곡예팀이 3색(色) 연기를 내뿜으며 축하 비행할 예정이다. 13일 모디는 축구 성지로 불리는 '웸블리 구장'에서 환영식을 갖는다. 캐머런 등 영국 내각 전원을 포함해 7만여명이 참석할 전망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오찬도 있다. 축하 비행과 대규모 환영식은 지난달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방문 때도 없었던 행사들이다. BBC 방송과 일간 가디언은 "지금까지 어떤 외국 정상도 받아본 적이 없는 대규모 환영 행사"라고 보도했다.
모디의 위상을 바꾼 것은 인도의 급성장한 경제력과 친기업 정책이다. 지난해 인도가 영국에 투자한 건수는 122건으로 미국·프랑스에 이어 셋째로 많았다. 인도 투자가 영국에서 만들어 낸 일자리만 1만개에 달한다. 영국 제조업의 상징이던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현재 인도 타타그룹에 넘어간 상태다.
'모디노믹스(Modinomics)'라 불리는 모디의 친기업 정책도 영국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모디 총리 취임 후 각종 인허가 과정이 간소화되는 등 투자 환경이 개선됐다"며 "같은 영어권에 역사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영국 기업들이 인도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크리스 오그던 교수는 "지금의 인도가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친기업적인) 모디가 총리라는 것"이라며 "영국은 과거사를 잊고, 인도와 더 깊은 경제적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캐머런은 "영국과 인도에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모디는 "오랜 친구(영국)와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디 총리의 이번 방문은 지난달 있었던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문과 비교된다. 시 주석은 당시 약 300억파운드(약 53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BBC 방송은 "모디 총리는 약 100억파운드(약 18조원) 규모 계약서에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의전도 비교된다. 비록 정치적 실권은 없지만, 공식적으로 인도의 국가 원수(head of state)는 대통령이다. 이 때문에 모디 총리 방문엔 시 주석 때 열렸던 버킹엄궁 근위병 사열이나 황금마차 이동 같은 행사는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