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이천수는 왜 박지성이 되지 못했을까

  • OSEN

    입력 : 2015.11.08 17:38





    [OSEN=인천, 서정환 기자] ‘축구천재’ 이천수(34, 인천)는 왜 박지성(34, 전 맨유)처럼 유럽무대를 휘젓지 못했을까.


    이천수는 8일 인천전용경기장에서 인천 대 부산의 경기가 끝난 뒤 공식은퇴기자회견을 가졌다. K리그와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맹활약한 이천수의 은퇴는 차두리(35, 서울)와 함께 ‘2002 월드컵 세대의 마지막’으로 큰 의미를 남기고 있다.


    이천수는 부평고시절부터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고려대를 거쳐 2002년 울산에 입단한 이천수는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그는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서도 일찌감치 발탁돼 특유의 재간으로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에게 박지성보다 이천수의 이름이 훨씬 유명했다.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던 이천수는 재능만큼 축구인생을 꽃 피우지 못했다. 이천수는 2003년 한국선수 최초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 진출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이후 이천수는 K리그, 사우디, 일본 등 여러 무대를 전전했다. 고향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동시대에 뛴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국민스타가 됐다. 아인트호벤을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에도 박지성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한국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성공한 박지성은 한국축구의 얼굴이 됐다. 시작은 이천수가 더 빨랐지만 이제 선수로서 업적은 박지성과 비교하기 어렵게 됐다.


    은퇴기자회견에 임한 이천수는 ‘재능만큼 축구인생을 꽃피우지 못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이야기하는데 나도 시대를 잘 태어났다. 축구에 대해서는 굉장히 노력했다. 이기려는 승부욕으로 노력했다. 나 자신도 인정해주고 싶다. 축구가 노력으로만 될 수 없는 부분이다. 별명으로 '밀레니엄'이 있었다. 새로운 스타가 필요할 때 나타났다. 그런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운이 좋아 이런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이천수가 유럽무대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페인 데뷔전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이천수의 슈팅은 골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동료선수가 다시 슈팅해 골을 넣어 이천수의 득점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만약 그 골이 들어갔다면 이천수의 유럽생활이 잘 풀렸을지도 모른다.






    이천수는 “아쉽다. 내 골 인줄 알고 세리머니도 했다. 토고전 (티셔츠) 세리머니를 하려고 했다. 스페인에서도 한다고 했는데 굉장히 아쉽다. 유럽에서 내가 골이 없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해오면서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그 선수가 안 넣었으면 안 들어갈 수도 있었다. 아쉽다. 유럽생활만 생각하면 아쉽다. 데뷔전이라 이슈가 됐었다. 대한민국의 추억이 있는 경기장이었다. 항상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이천수는 아직 확실하게 진로를 정하지 않았다. 구단 인스트럭터가 된다는 말도 있고, 해설자가 된다는 소문도 있다. 이천수는 지도자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실전에 강한 선수를 키우고 싶다. 외국생활을 9군데서 했다. 유럽 2군데, 아시아, 사우디, 한국도 여러 팀을 다녔다. 학원축구 당시 좋은 지도자도 많이 만났다. 지도자들의 장점을 전수해주고 싶다. 축구는 실전이 안 되면 할 수 없다. 실전적인 선수를 많이 만드는 것이 내 지도의 목표”라며 ‘제 2의 이천수’를 키울 꿈을 꿨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인천=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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