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지(왼쪽), 테인 세인 대통령.

민주화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8일 오전 6시부터 미얀마 전역에서 총선 투표가 시작됐다. 미얀마는 2011년 군부의 계획에 따라 퇴역군인을 주축으로 한 '민간 정부'가 수립됐지만, 국민의 손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서 자발적인 민주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선거 결과는 9~10일 사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검표를 걸쳐 이달 중순쯤 결과를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야당 우세

"다스크(DASSK)! 다스크!" 양곤시 바한구역 제3중학교 투표소 바닥이 떨렸다. 8일 오전 8시 50분쯤, 붉은빛 전통 드레스 차림의 수지 여사가 저 멀리서 보이자 지지자 수천명이 발을 굴렀다. '다스크'는 대모 아웅산 수지를 뜻하는 'Daw Aung San Suu Kyi'의 알파벳 표기 첫글자만 딴 것이다. 미얀마어 'Daw'는 교양 있는 여성 앞에 붙이는 존칭이다.

함성이 건물 안을 웅웅 울렸고, 카메라 플래시는 사방에서 터졌다. 투표를 마친 그녀는 자신의 지역구인 카우무(kawmu)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입술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해 보이며 발언을 아끼던 양곤 시민들도 수지 여사가 근처에 있으면 말문이 트였다. 초아웅(34)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미얀마 민주화를 기다리고 있다"며 왼쪽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보라색 잉크가 묻어 있었다. 이미 투표를 했다는 표시였다.

이번 총선에서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오후 4시, 선거가 끝나자 NLD 당사 앞 도로는 밀려든 인파로 꽉 들어찼다. 군중은 대형 전광판으로 개표 방송을 보면서 "NLD 나임피!(NLD가 이겼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NLD 우엔테이 상원의원은 "머지않아 미얀마도 한국처럼 민주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당사 안팎은 고요했다. USDP 당원이라는 코팃(42)씨는 "개혁개방을 완수한 우리 당의 저력을 얕봐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년 전처럼 군부가 선거 뒤집을까 우려

세계의 이목은 NLD가 창당 이래 첫 집권을 하느냐에 쏠려 있다. 과반 의석 확보가 관건이다. 미얀마 헌법은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군부가 전체 의석 25%를 가져가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NLD가 과반수로 이기려면 선출직 의석(491석) 가운데 67%(329석)를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USDP는 33%(163석)만 얻으면 된다. 시간이 갈수록 양강(兩强) 어느 쪽도 과반을 확보 못 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럴 경우 어느 쪽이든 소수 정당과 연정(聯政)을 구성해야 한다.

"투표했어요" 보랏빛 열망 - 8일(현지 시각) 미얀마 양곤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투표를 했다는 상징인 보라색 잉크가 묻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이날 전국 4만여 개 투표소에서 25년 만에 자유 총선을 위한 투표가 실시됐다.

투표율은 70% 안팎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이날 오후 양곤시 알론 구역에서는 불볕더위에 양산(陽傘)까지 받쳐든 투표 행렬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양곤 시내는 기대와 긴장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이번에야말로 NLD가 미얀마를 민주화로 이끌 거라는 바람과, 25년 전처럼 군부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시민들 뇌리엔 1988년 민주화 시위 당시 군부가 수천명을 학살한 기억도 여전하다. 바로 그해에 가정주부였던 수지 여사가 민주화 투사로 변모했다. 시민 우팅에이(62)씨는 "NLD를 지지하지만, 이들이 선거에 이긴다 해도 함부로 거리로 뛰쳐나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가 이번에도 승복하지 않으면,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요 사태가 일어날 거라는 우려가 있다. 양곤 주재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조심성 많은 일본 기업인 상당수는 이미 선거 전에 미얀마를 빠져나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