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미화원 '기피 1호'… 덕수궁길 낙엽 쓸어보니

    입력 : 2015.11.07 03:00 | 수정 : 2015.11.07 15:04

    본지 기자, 서울 중구청 미화원으로 새벽 낙엽청소
    낙엽 무겁고 미끄러워 2m 쓰는데 30분 걸려… 청소 후 전부 소각장행
    6년동안 미화원 안뽑아… 1.5~2km가 하루 내 몫

    새벽 5시 30분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출근했다. 기온은 7도를 기록했다. 서울 중구청 청소행정과 박정출(56) 가로정리 청소반장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4년째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하고 있다. 박 반장은 "이거 생각보다 힘들어요. 괜찮겠어요?"라며 작업복과 빗자루를 건넸다. 그가 덕수궁 돌담길 끝을 가리켰다. "오늘 낙엽 쓸 곳은 여기 대한문부터 이 길 끝까지예요. 얼마 안 돼요. 여기 아주머니들 할당량의 절반도 안 되니까 빨리 끝낼 수 있을 거예요." 길 끝은 아주 먼 것처럼 보였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빨간 느티나무 단풍잎이 떨어지던 지난 3일 미화원 5명과 함께 낙엽을 치웠다. 서울 단풍 명소로 늘 꼽히는 대한문부터 덕수궁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덕수궁길 전체다.

    덕수궁 돌담길은 기피 구역 1위

    비질에도 요령이 있다. 한 손에는 싸리비를 들고 다른 손으론 쓰레받기와 쓰레기봉투 입구를 한꺼번에 쥔다. 싸리비는 낙엽이 떨어지는 10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만 지급되는 낙엽 전용 빗자루다. 길이 130㎝인 싸리비가 버거워 헛비질을 하고 있으니 12년 차 미화원 A(55)씨가 조언했다. "빗자루 손잡이 끝을 이렇게 겨드랑이에 껴야지 편해요. 지금은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잖아요." A씨 말대로 하니 팔 힘은 덜 들어가고 낙엽은 잘 쓸렸다. 그런데 제대로 조준이 안 됐다. A씨가 이번엔 "바닥을 통통 튕겨내듯 쓸어봐요"라고 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니 낙엽이 겨냥한 곳으로 모였다. 요령을 배우고 나니 일이 조금 빨라졌다. 30분간 빗자루와 씨름하다 뒤를 돌아보니 2m쯤 쓸었다. 이날 할당량은 700m였다.

    덕수궁길을 포함한 근처 가로(街路)는 미화원들 사이에서 기피 구역이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플라타너스 등 낙엽 떨어지는 나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6년째 가로 청소를 한다는 미화원 B(60)씨는 "낙엽 떨어지는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그 보름이 1년치 일의 대부분"이라며 "이 구역이 경치가 좋지만 다들 꺼리는 이유가 바로 낙엽"이라고 했다.

    이파리의 테두리가 톱니 모양인 느티나무 낙엽과 노란 은행잎이 뒤엉켜 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덕수궁길에 쌓여 있는 낙엽을 김수경 기자가 빗자루로 쓸어모으고 있다.
    이파리의 테두리가 톱니 모양인 느티나무 낙엽과 노란 은행잎이 뒤엉켜 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덕수궁길에 쌓여 있는 낙엽을 김수경 기자가 빗자루로 쓸어모으고 있다. / 고운호 객원기자
    은행잎과의 사투

    쓰레받기에 낙엽 한 뭉치를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무겁고 미끄러운 낙엽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다. 미화원 A씨(55)는 "잘 안 들어가면 한쪽 발로 밀어 넣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기자가 "낙엽이 생각보다 무겁고 미끄럽다"고 했더니 "느티나무 잎보다 은행나무 잎이 5배는 무겁다"고 했다. 잎 자체가 두껍고 물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비라도 오는 날엔 어깨가 빠질 지경이라고 했다.

    한 사람이 쓸어 담은 낙엽을 담는 데만 100L짜리 쓰레기봉투 3~4개가 하루에 쓰인다. 낙엽이 한창인 11월 둘째 주가 되면 한 사람이 쓰레기봉투 15개까지도 쓴다. 봉투가 모자라 마대자루에 쓰레기봉투 3배 분량의 낙엽을 쑤셔 넣기도 한다. 은행잎으로는 쓰레기봉투를 꽉 채우지 않는다. 다 채우면 너무 무거워 장정 2명이 달라붙어도 트럭에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잘 쓸리는 게 느티나무 낙엽이다. 10㎝ 정도 길이에 날씬한 모양으로 테두리가 톱니바퀴 모양으로 돼 있어 빗자루가 척척 감긴다. 하지만 가볍다. 모아놓은 느티나무 낙엽 더미 위로 바람이라도 불면 낙엽들이 여기저기로 도망간다. 몇 시간 동안 공들인 비질도 헛고생이다.

    덕수궁길 낙엽 중 가장 골칫거리는 플라타너스다. 잎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365일 떨어진다. 잎 크기는 성인 남자 손바닥보다 큰데 이파리에는 힘이 없어 바닥에 척 붙어버린다. 플라타너스 낙엽은 사실상 손으로 쓸어 담아야 한다.

    한겨울에도 반팔 입는 이유

    낙엽뿐 아니라 짓뭉개진 은행 처리도 미화원 담당이다. 박정출씨는 "은행 열매가 정말 골치 아프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은 은행 열매는 몇 시간만 지나도 구린내를 풍기는데 살수차가 물을 뿌려도 냄새와 흔적이 가시지 않는다. 그 위에 미화원들이 쭈그려 앉아 바닥 솔질을 해야 한다. 뭉그러진 은행 열매를 박박 닦으면 냄새가 더 역해진다.

    정동과 서소문동의 모든 길은 여성 미화원 5명이 관리한다. 모두 50·60대다. 한 사람이 매일 1.5~2㎞씩 치운다. 올해 60세인 B씨가 정년퇴직하면 남은 4명이 B씨 구역까지 책임져야 한다. 예산 문제로 사람을 뽑지 않은 지 6년이 됐다. "새벽부터 나와 하루종일 바닥 쓸려면 힘들겠다"는 말에 28년차 미화원은 빗자루를 고쳐 들며 "이 정동길 바닥이 곧 우리 집 바닥"이라고 했다.

    3시간30분 동안 덕수궁길을 쓸었더니 형광색 작업복 안에 입은 얇은 티셔츠가 온통 땀으로 젖었다. 출근할 때 혹시 추울까 한 겹 더 껴입은 게 후회가 됐다. 빗자루를 쥔 손바닥과 팔도 쑤셨다. 맡은 구역 청소가 이미 끝난 미화원들이 종이컵 커피를 건네며 "이제 우리가 왜 반팔을 입었는지 알겠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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