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부산 앞바다서 생각한 생존의 일격

    입력 : 2015.11.05 03:20

    미·일 對 중 대결장은 결국 우리 목줄인 바다… 이 바다는 늘 평온할까
    '한 방' 없으면 당하는 게 우리 지정학의 숙명
    美 제독의 진심 어린 조언 '韓은 잠수함에 투자하라!'

    양상훈 논설주간 사진
    양상훈 논설주간

    10월 23일 부산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4500t급 한국형 구축함 최영함에 올랐다. 아덴만 인질 구출 작전을 수행했던 주력 구축함이다. 내부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큰 배였고, 군함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생각해보면 미국 퇴역 군함에 페인트칠해 쓰던 게 그리 오래전 얘기가 아니었다. 그 시절 수병들은 배에 물이 부족해 씻지도 못했다고 한다. 흥하는 나라는 해군이 커지고 나라가 망하면 해군이 제일 먼저 쇠락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 듯했다.

    바다로 나가니 1만4500t급 대형 상륙함 독도함이 다가왔다. 200m 가까운 비행갑판 위 2300여명 국민이 이쪽을 향해 모두 손을 흔들었다. 최영함에 탑승한 사람들과 각국의 해군 제독, 장교들도 손을 흔들었다. 그저 보기 좋은 광경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감회가 일어 잠시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뒤로 이지스함, 구축함, 신형 호위함, 상륙함, 기뢰부설함, 호위함, 초계함, 유도탄 고속함, 고속정 순으로 다가왔다. 각 함정에서 도열한 장병에게 경례 명령을 내리는 장교는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대잠초계기들과 대잠헬기들이 상공을 날고, 1800t급, 1200t급 잠수함이 뒤를 이었다. 방산 비리로 신뢰를 잃었다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관함식(觀艦式·해상사열식)에서 본 해군은 20년 전인 1990년대 중반에 우리가 잡았던 목표에 거의 도달한 듯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독도에 접안시설을 만들자 일본이 크게 반발하면서 동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때 정부는 일본에 비해 해군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당시 돈으로 12조원 이상을 더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실이 지금의 해군이다. 우리나라 리더십은 어떤 때는 한심하게도 느껴지지만 중요한 고비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우리 관함식 직전에 일본 해상자위대도 관함식을 열었다. 일본 해자대는 질(質)로는 미국에 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올해 관함식에는 우리 구축함도 참가했는데 다녀온 장병들 얘기로는 해자대의 위용이 간단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 국민의 전통적인 해군 사랑도 대단해 관함식 탑승권이 80만원 가까운 돈에 거래됐다고 한다. 그런 일본이 조금씩 거친 얼굴, 어쩌면 일본인들 본래의 모습일지 모를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연인지 우리의 목줄인 남중국해에서도 심상찮은 풍랑이 일고 있다.

    석양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바다 위에서 우리의 지금 이 생존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생각했다. 우리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앞으로 30년 후에도 미국이 이대로의 미국이고, 중국이 우리 희망대로의 중국이며, 일본은 아베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누가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 외교관 한 사람이 미 해군 최고위 제독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 미군 제독이 했다는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한국은 잠수함에 투자하라." 우리 처지를 잘 아는 그 제독의 말에는 너무나도 명백한 전략적 진실이 담겨 있다. 한국은 서로 으르렁대는 세계 4강의 한가운데에 끼어 있다. 북(北)은 핵 장난 중이다. 국가로서 '일격'(一擊)을 갖고 있지 못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GDP의 10배에 도달할 기세이고, 일본도 4배 가깝다. 군비 경쟁이 불가능한 차이다. 미 제독의 조언은 어떻게 한국이 '일격'을 갖추고 최소한의 전략적 억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이다. '한국은 잠수함에 투자하라!'

    압도적 능력의 미 해군도 잠수함만은 잘 찾아내지 못한다. 상대국 중심부에 일격을 가하거나 해상 통로를 위협할 수 있는 잠수함이 바다 밑 어딘가에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억제력을 발휘한다. 핵을 가질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 이 이상의 비대칭 전력이 있을 수 없다. 잠수함 전력 전체로는 중·일을 따라가기 어렵다 해도 잠수함 세력 존재 자체의 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에 최선의 대안이다.

    문제는 잠수함이 국가적 '일격'이 되려면 원자력 추진체계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디젤 잠수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능력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미국 영국은 원자력 잠수함만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1960년대에 원자력 수상 선박 실험을 했고, 근자에는 수중 원자로 가동 실험까지 마쳤다고 한다. 원자로를 동력으로 이용하는 원자력 잠수함은 핵폭탄과는 상관없지만 미국 등은 원자로 연료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원자력 잠수함 확산을 막고 있다. 강대국의 전유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뜻이 있으면 언젠가는 길이 열린다. 중·일 사이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1990년대 중반 시작한 1차 해군 계획이 이제 완성됐다면 앞으로 30년 뒤를 내다본 2차 원자력 잠수함 계획이 시작돼야 한다. '일격을 가할 수 없으면 나라도 아니다'는 말은 모든 국민이 언제나 새기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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