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현(縣) 이와키시(市)의 컨테이너 가설주택에서 만난 다섯 살 사이토 유키군은 신(新)조선통신사 대원들에게 선물받은 자전거 주위를 계속 맴돌았다. 사이토군은 "빨리 커서 이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며 대원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사이토군 가족의 해안가 단독주택은 그가 갓난아기였던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가족 5명은 모두 무사했고, 이후 다카쿠(高久) 가설 주택지에서 쭉 살았다고 했다. 사이토군의 어머니는 "한국 젊은이들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선물을 주고,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니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신조선통신사 한국 대원 25명은 2일 도쿄 동북쪽으로 210㎞ 떨어진 이와키시를 찾아 자전거 30대와 포장 삼계탕 200개를 선물했다. 한·일 우호를 위한 '두 바퀴로 달리는 신조선통신사'의 1900㎞ 여정은 1일 도쿄 입성으로 끝났지만, 대원들이 4년 반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나미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자며 의기투합하면서 만들어진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와키시는 동일본 대지진 때 460명이 죽고 주택 9만호가 완파된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다. 30㎞ 거리에 방사능 유출 사건이 터진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다. 이번 방문에 동행한 사토 다이스케(佐藤大介) 프리랜서 기자(전 후지TV PD)는 "일본에서 방사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농수산물과 관광이 주요 삶의 수단인 이와키시는 대지진 이후 생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일본에서 손꼽히던 수산물 판매장인 이와키 라라무는 대지진 전과 비교해 매출이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이치요시 상점의 하가 히로하루(芳賀弘治) 사장은 "앞바다에선 어획량이 10분의 1로 줄었다"며 "여기서 파는 굴이나 참치, 오징어 등은 홋카이도나 베트남 등 다른 지역에서 받아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연간 26만명이 몰렸다는 우스이소(薄磯) 해수욕장. 하지만 이날 신조선통신사 대원을 맞은 건 흙더미 가득한 공사 현장이었다. 이곳은 백사장이 펼쳐진 해수욕장과 곶 위에 선 시오야자키 등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했다.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가사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쓰나미는 해수욕장 인근 주택 344채 중 301채를 휩쓸어 갔다. 주민 787명 중 115명이 죽었다. 복구공사 현장에는 시오야자키 등대만이 덩그러니 서있었다. 이곳 주민 시케 쇼조(四家昭三·81)씨는 "여기서 태어나 바다에서 모래 장난이나 수영을 하며 자랐다"며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지금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중앙대 의대 교수인 서경묵(58) 대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피해를 입고도 밝고 상냥하며 고향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마음에 감동했다"며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대원들이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하자 주민들은 손을 잡고 한국말로 "고마워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30여 명은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대원들의 버스를 배웅했다.
신조선통신사 대원들과 함께 이와키 일대를 둘러본 양계화 주(駐)센다이 총영사는 "일본에서도 가설 주택에 사는 동북부 20만 가구의 고통이 점점 잊히고 있다"며 "아플 때 도와주는 게 진정한 이웃 아니냐. 한·일의 새로운 우호 관계를 만들겠다는 신조선통신사의 진심이 이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