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대통령 듣기좋은 보고만 하는 외교안보 라인

조선일보
  • 권대열 정치부장
    입력 2015.10.29 03:00

    권대열 정치부장
    권대열 정치부장
    박근혜 대통령은 2년 8개월 재임 동안 "외치(外治)와 안보(安保)를 잘한다"는 평가를 꽤 들었다. 그런데 최근 그런 평가를 흔들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에 하나의 정답이 있기는 힘들다. 중국 눈치 보다가 미국과의 동맹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미국을 선택했다가 중국이 휴대폰 수입 금지라도 하면 우리 경제는 당장 호흡 곤란에 빠진다. 어느 한쪽 길로 간 결과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두고 무턱대고 잘못했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어떤 결정 과정에서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를 결정권자에게 주입한 결과라면 그건 문제가 다르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옆에 두고 "한국이 중국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심각한 이상 신호다. 그런데도 외교부 장관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아무 문제 없다"는 말만 한다. 곧이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군사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그 순간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다시 "우리는 이 문제에 입장 표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간에 끼어서 뭐라고 말하기 곤란한 입장이라면 가만있으면 되지 뭐하러 누가 시키지도 않은 입장 표명을 마이크 잡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렵사리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만 해도 그렇다. 이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가 없으면 일본 총리와 만나지 않는다"고 해왔다. 물론 그런 선택도 가능하다. 다만 그 길이 '막다른 골목'이 될 수 있다는 건 외교 문외한도 아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외교부는 막다른 골목을 다 들어가서 몸으로 확인한 뒤에야 "안 되겠다. 되돌아 나가자"고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에서는 "정권 초에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갔는데 이를 본 대통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뒤로는 누구도 정부 내에서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라는 말이 정설(定說)처럼 돈다. 대통령 심기 거스를까 봐 막다른 길인 줄 알면서도 갔다는 얘기다.

    한국형전투기(KF-X) 사업도 마찬가지다. 2025년까지 미국 기술 도입해서 하겠다고 하다가, 미국이 거부하자 국방장관이 달려가 '구걸 외교'라는 소리까지 듣고 또 한 번 거절당했다. 그러고선 '거절당할 줄 알았지만 여론 눈치가 보여서 그냥 가봤다'고 한다. 이제 와선 "자체 개발로 문제없이 만들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기술 도입 가능하다" "미국 정부가 줄 수도 있다"고 한 당국자는 문책해야 한다. 지금 "자체 개발 가능하다"는 정보를 주입하고 있는 사람들 말도 검증해봐야 한다.

    20세기 초 영국 외교관 해럴드 니컬슨이 쓴 '외교론'은 외국과의 사이에서 나랏일을 다루는 이들에게 기초 입문서 같은 책이다. 그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중요 덕목으로 '충성심'을 꼽으면서도 "(윗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하려는 경향은 충성으로 가장한 불충(不忠)"이라고 경고했다. '위로를 주는 보고서를 올리는 사람을 신용할 만한 사람으로, 골치 아픈 고통을 주는 보고서를 낸 사람을 심지가 나쁘고 머리가 둔한 사람으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려면 이런 기본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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