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은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항의하는 '인쇄물 시위'를 벌였고, 저녁에는 국정화 반대 시민단체들과 대규모 장외 촛불 집회도 했다.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간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 110여명은 '국정교과서 반대' '민생 우선'이라고 적힌 인쇄물을 의석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 바깥쪽에 붙였다. 연단에 선 박 대통령 입장에선 눈 가득히 글자판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앞서 민주당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정연설 때 광우병 사태에 반발하며 붉은색 넥타이와 스카프를 매고 입장했고, 통합진보당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 때 마스크 시위를 했다. 한나라당도 야당이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정연설 때 기립을 거부했다.
[새정치연합 유인태 "대통령 국회 연설에 시위는 부적절" ]
이날 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거의 전원 기립했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시정연설 직전 열린 야당 긴급 의원총회에선 "교문위원들이라도 퇴장하자" "역사 교과서를 들고 시위하자"는 등의 의견도 나왔지만, 지도부가 수위를 낮췄다.
야당 의원 대다수는 박 대통령의 연설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도 박수는 치지 않았다. 일부 교문위원들은 현행 역사 교과서를 펼쳐놓고 읽는 모습을 연출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을 방해하지 않으며 예우를 갖추되 교과서 사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연설 후반부에 목소리 톤을 높이며 교과서 국정화 필요성을 주장하자 박영선 전 원내대표와 은수미 의원 등 7~8명은 줄줄이 퇴장했다.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갈 땐 문재인·조경태·백군기·전순옥 의원만 일어났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고집불통의 극치였다" "북한을 보는 듯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표는 "이번에도 국민들의 요구에 대한 답이 전혀 없었다"며 "경제정책의 실패와 무능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그저 상황 탓, 남 탓뿐"이라고 했다. 박광온 의원은 "(연설에) 내용은 없고 (여당 의원들의) 박수만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연합 의원 60여명은 이날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야권 성향 시민단체들과 함께 '교과서 국정화 반대 결의대회'를 주최했다. 야당의 장외집회는 작년 8월 세월호법 제정 촉구 시위 이후 1년 2개월 만이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는 처음이다. 당원과 시민단체 회원 등 1500여명의 참가자는 촛불을 들고 "민생외면·국민무시 박근혜 정권은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문 대표는 단상에 올라 "현행 역사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면 이를 검·인정한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야 마땅하다"며 "국제적으로 수치스러운 교과서 국정화가 박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역사관과 욕심 때문에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화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교육부가 비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며 심야에 교육부 건물로 찾아갔던 야당 의원들을 '화적떼'라고 부른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의 최고위원직 사퇴도 요구했다. 야당은 같은 장소에서 열린 '국정화 반대' 문화제에도 참석한 뒤 약 3시간 만에 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