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공산국가였던 폴란드에서 1990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좌파 정당이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5일(현지 시각) 열린 폴란드 총선 출구조사 결과, 극보수 '법과정의당'이 약 39% 득표율로 460석 가운데 242석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년간 집권해 온 중도보수 성향의 시민연단은 133석으로 2위에 머물렀다. 법과정의당의 총선 승리가 확정되면, 52세 여성 의원 베아타 시들로가 신임 총리에 오를 전망이다.

정권교체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좌파의 몰락이다. 이번 폴란드 총선에 좌파 정당으로선 공산당 후신인 '좌파연합'과 중도좌파 성향의 '다함께'가 참여했다. 하지만 이 정당들은 의석 확보를 위한 최소 득표율(단일 정당은 5%, 정당 간 연합체는 8%)을 넘는 데 실패했다. AP통신은 "폴란드에서 1990년 민주화 이후 좌파가 의회에서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25일(현지 시각) 치러진 폴란드 총선 출구 조사 결과 야당‘법과정의당’이 집권당‘시민연단’을 누르고 승리한 것으로 나타나자 야로슬라우 카친스키(오른쪽) 법과정의당 당수가 바르샤바 당사에서 차기 총리가 될 베아타 시들로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있다.

폴란드의 총선 결과는 최근 동유럽 지역의 '좌파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흔히 동유럽으로 분류할 수 있는 러시아와 독일 사이 17개국 가운데 좌파 집권은 체코·슬로바키아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인구·경제력에서 동유럽 강국으로 분류되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은 모두 중도 또는 우파가 잡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동유럽의 지역 리더인 폴란드도 이번 선거로 많은 주변 국가들처럼 '오른쪽(우파)'으로 옮겨갔다"고 보도했다.

동유럽에서 좌파의 약세는 '반(反)러시아, 친(親)서방' 정서와 관계가 있다. 폴란드 총선에서 승리한 '법과정의당'은 유로화 사용에 반대하는 등 반(反)유럽연합(EU) 성향이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폴란드 영구 주둔을 요구하며 서방과의 군사관계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폴란드가 시리아·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는 유럽과 서방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고 26일 보도했다. 반면 '좌파연합'은 러시아와 서방 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등 상대적으로 친러 성향을 보였다.

서유럽 국가들도 2009년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에서 독립한 6개국과 'EU·동유럽 파트너십'이라는 정치·경제 협의체를 만들어 러시아 견제를 위해 동유럽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 발전에 대한 욕구도 동유럽 국민이 좌파 대신 우파를 선택하는 이유로 꼽힌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반 총리도 감세(減稅) 등 친기업 경제정책을 앞세워 좌파 연립정부를 무너뜨리고 2010년 집권했다.

서유럽에서 시작한 극우 돌풍도 동유럽 좌파에겐 악재다. 폴란드의 '법과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반(反)이민 정책으로 표심을 공략했다. 특히 동유럽은 가톨릭 중심의 단일민족 성향이 강해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크다. 최근 헝가리 등은 국경을 폐쇄하고 이민자 유입을 막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잘레프스키 연구원은 "공산주의 몰락 후 계속된 정치적 혼란이 동유럽에서 극우주의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중부 유럽 발트해(海)에 면한 나라 폴란드는?]

좌파 약세는 전 유럽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EU 초기 15개 회원국을 분석해 보면,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1960년대 이후 최악"이라고 전했다.

폴란드의 이번 총선은 현직 총리인 시민연단의 에바 코파츠(59)와 '법과정의당' 소속 시들로, 두 여성 정치인의 맞대결이었다. 폴란드의 차기 총리직을 예약한 시들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의 광부 집안 출신이다. 이번 선거에서 연금 수급 연령을 낮추고, 은행 등에 대한 세금 강화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들로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에 반(反)이민 정서를 파고들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