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킬라에 다 비켰다

에티오피아 비킬라 1위 - 2시간 9분 40초
3連覇 노리던 쿠갓 2위 - 2시간 10분 01초

트로피 든 에티오피아의 비킬라에티오피아의 아둑나 타켈레 비킬라(26)가 25일 춘천마라톤 우승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2만5000여 명이 짙어가는 춘천의 가을 길을 달렸다. 2015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조선일보사·춘천시·스포츠조선·대한육상경기연맹 공동 주최)이 25일 춘천 의암호 순환코스에서 열렸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은 계절의 정취를 호흡하며 저마다 추억을 만들었다.

국제 초청 부문에선 에티오피아의 아둑나 타켈레 비킬라(26)가 정상에 올랐다. 비킬라는 42.195㎞ 풀코스를 2시간09분40초에 가장 먼저 주파했다. 2013·2014년 1위를 했던 닉슨 쿠갓(27)이 2시간10분01초로 2위, 벤 키플리모 무타이(33·이상 케냐)가 2시간10분36초로 3위를 했다.

이날 출발 시각인 오전 9시의 춘천 지역 기온은 영상 10.5도(습도 77%)였고, 엘리트 선수들이 골인한 오전 11시 10분 무렵엔 영상 15.6도(습도 55%)였다. 선두 그룹은 20㎞를 1시간00분20초에 통과해 케냐의 스탠리 키플레팅 비요트가 대회 기록(2시간07분03초·2011년)을 세웠을 때의 구간기록보다 좋았다. 하지만 햇볕이 따가운 편이었고, 춘천댐을 돌아 내려오는 30~35㎞ 구간에 맞바람이 불어 기록 단축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비킬라는 에티오피아 출신으로는 2009년 무르게타 와미 이후 6년 만에 춘천마라톤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35㎞ 지점까지 쿠갓, 무타이와 나란히 달리다 38.5㎞를 지나면서 선두로 치고 나왔다.

춘천의 가을길이 25일 마라톤 천국이 됐다. 이날 오전 2015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의 출발점인 공지천교 부근은 2만5000명의 마라토너로 가득했다. 출발 신호에 따라 일제히 출발한 참가자들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의암호 순환코스를 뛰었다.

비킬라는 올해 1만m 트랙 종목 세계랭킹 11위(27분19초34)인 중장거리의 강호. 마라톤 출전은 작년 프랑크푸르트 대회(2시간08분31초)와 올해 초 두바이 대회(2시간09분39초)에 이어 춘천 대회가 세 번째였다. 그는 내년 리우올림픽에 에티오피아 국가대표로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비킬라는 "코스 주변의 자연경관이 정말 아름다웠다"면서 "내 기록을 깨지는 못했지만, 우승을 해서 기쁘다. 내년에도 춘천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우승 상금은 5만달러(약 5600만원).

쿠갓은 3연패(連覇)에 실패했다. 그는 춘천마라톤에 올해까지 네 번 출전해 1위와 2위를 두 번씩 했다. 쿠갓은 "경쟁자이자 친구인 비킬라의 스퍼트가 강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면서 "내년에 세 번째 우승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춘천에서 가능성 증명한 김영진·이연진

엘리트 부문 1위

김영진, 이연진.

춘천마라톤 국내 남자 엘리트 부문에선 김영진(32·삼성전자)이 2시간23분29초로 1위를 했다. 김영진은 "마라톤은 30대부터 기량이 만개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번 우승을 계기로 다시 국가대표에 도전해 내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5000m를 주로 뛰던 김영진은 7년 전인 25세 때 비교적 늦게 마라톤에 입문했다. 개인 최고 기록은 2시간13분49초. 김영진은 지난 7월 족저근막염으로 훈련을 두 달 정도 쉬었지만 "춘천에서 꼭 우승해 마라톤 인생의 전환점을 삼고 싶다"며 출전을 강행했다. 삼성전자 육상단 황규훈 감독은 "부상 여파로 기록이 생각보다 안 나왔지만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대회였다"고 했다.

국내 여자 엘리트 부문에선 이연진(28·영주시청)이 2시간41분53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연진은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산악 훈련에 집중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이홍국씨 3년 연속 우승… 부부 챔피언도 탄생

마스터스 부문 1위

이홍국, 류승화.

남자 마스터스 부문에선 이홍국(43)씨가 2시간35분46초로 3년 연속 춘천마라톤 1위를 했다.

케냐의 나다히 레우벤 엠부투가 마스터스 부문에 '이색 출전'해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그는 그룹별 출발 순서를 어겨 실격처리됐고 이씨에게 우승의 영광이 돌아갔다. 이씨는 원래 마라톤 선수 출신이다. 수원공고 1학년 시절 마라톤을 시작했고 2005년까지 육상 1만m(트랙)와 하프 마라톤 국가대표로도 활동했다. 5년 전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은퇴 후에도 마라톤 사랑은 여전하다. 이씨는 "지금도 매일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2시간 이상 훈련한다"고 했다. 올해에만 벌써 40회 이상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씨는 지난해까지 수원 지역 동호회의 감독을 지내며 아마추어 회원들에게 자신의 마라톤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여자 부문에선 대회에 처음 출전한 류승화(37)씨가 2시간46분50초로 역대 춘천마라톤 여자 마스터스 부문 최고 기록(종전 기록은 2시간47분19초)을 세우며 우승했다. 고교 때 중장거리 선수로 활동했던 류씨는 2003년 삼성SDI를 다니던 시절 회사 선배이자 지금의 남편인 이지원(45)씨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류씨는 2001·2005년 춘천마라톤 남자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남편 이씨에 이어 올해 여자 마스터스 1위를 차지하며 부부가 춘천마라톤 마스터스 1위를 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마라톤처럼 함께 뛰는게 인생, 아이들도 배웠겠죠"

127명 달린 서울삼육중학교

"힘들어서 끝까지 못 뛰면 어떡해?" "조금 걷다가 뛰면 되지.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출발선에 선 서울삼육중학교 학생들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서울삼육중은 학생 105명과 학부모, 교사 등 총 127명이 이날 춘천마라톤 10㎞ 코스를 달렸다. 작년에 뛰었던 학생들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올해는 참가 학생 숫자가 두 배로 늘었다. 학부모들도 "아이가 춘천마라톤에 참가한다는데 우리 부부도 같이 뛰고 싶다"며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오세원(56) 교감과 교사 3명도 "학생들과 함께 달리겠다"며 매일 새벽 집 근처를 2~3㎞씩 달렸다. 오 교감은 "아이들이 스스로 운동장 트랙을 돌며 마라톤 준비를 하더라"며 "춘천마라톤이 교사와 학생의 일상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10㎞를 달린 교사 임정우씨는 "서로 도우며 함께 달리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아이들이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마라톤 특별취재팀]

▲취재=김동석 부장, 성진혁 차장, 최수현·최인준·오유교·임경업(이상 스포츠부) 윤동빈·최희명(이상 사회부), 김지섭(경제부), 원선우(정치부), 윤형준(산업1부), 배준용(사회정책부), 양지호(문화부), 이기훈(국제부) 기자

▲사진=주완중 차장, 조인원 차장, 남강호·이태경·박상훈·김지호 기자, 고운호 객원기자(이상 조선영상비전 멀티미디어영상부), 허상욱 기자(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