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8일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시 앞바다인 사가미(相模)만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관함식(바다 위에서 하는 사열)에 참석한 뒤, 요코스카항에 정박 중인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에 탑승했다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일본 현직 총리가 미국 항공모함에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널드레이건호(10만1400t)는 미국이 보유한 니미츠급 항공모함 10대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두 척 중 한 척이다. 니미츠급이란 여러 가지 항공모함 중 현존 최대·최강 레벨에 붙는 말이다. 지구상에 이보다 더 센 배는 제럴드포드급 항공모함밖에 없고, 이건 아직 만들고 있다.

(왼쪽 사진)1945년… - 1945년 9월 2일 시게미쓰 마모루 당시 일본 외무대신이 도쿄만에 정박해있던 미군 전함 미주리호에 올라 일본 정부를 대표해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2015년… - 美항모 위 전투기에 오른 日총리 18일 아베 일본 총리(왼쪽에서 둘째)가 전후(戰後)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군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에 올랐다. 그는 주요 시설을 둘러본 뒤 함상에 배치된 F-18 전투기 조종석에서 환히 웃고 있다.

이날 아베 총리는 레이건호에 타기 앞서 일본 구축함 구라마(5200t)호를 타고 해상자위대가 펼치는 관함식을 지켜봤다. 자위대 함정 36척과 항공기 33대가 동원됐다.

아베 총리는 구라마호에서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엄혹함을 더하고 있다"면서 "원하건 원치 않건 위협은 쉽게 국경을 넘는다"고 했다. 그는 "(안보위협에) 한 나라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시대"라면서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을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한 법적 기반이 최근 통과된 안보관련법이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로널드레이건호에 대해 "동일본 대지진 때 서둘러 달려와준 '친구'"라고 강조했다. 미·일 동맹 전반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미국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으로 항해하던 로널드레이건호를 돌려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앞바다에 정박시켰던 일을 가리키는 얘기였다.

당시 로널드레이건호 승무원들은 헬기를 이용해 원전 사고 피해자와 지진 피해자를 구조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항공기들도 로널드레이건호에 날아와 기름을 넣었다. 작전명 '도모다치'(친구)였다. 아베 총리는 이 배가 일본에 배치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해상자위대 헬기로 로널드레이건호까지 이동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와 나카타니 겐 방위상도 동행했다. 미 해군 제3함대 사령관인 노라 타이슨 중장이 아베 총리를 영접했다.

아베 총리는 전투기 조종석으로 올라가 웃음 띤 얼굴로 사진 촬영에 응하기도 했다.

현재 일본은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올해 취역한 구축함 이즈모(1만9500t)호는 "사실상 항공모함급"이란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구축함도 이즈모의 절반이 안된다. 일본 조선사(造船史) 역시 우리와 비교하기 힘들다. 20세기 초 항공모함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이디어를 내고 다듬고 시험한 건 미국·영국·프랑스지만 실제로 배 위에서 전투기를 띄우는데 맨 처음 성공한 건 일본이었다(1914년 와카미야호).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뒤 "일본의 자위(自衛)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묘한 논리로 조선을 삼키고 중국 대륙과 태평양을 침탈하다 2차대전에 패했다.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한 사람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에 한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외무대신이었다. 미주리호는 배 위에서 비행기가 뜨는 항공모함(aircraft carrier)과 달리 배 위에서 포를 쏘는 전함(battleship)이었다. 이날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미국 항공모함에 탄 것이 미·일이 힘을 합쳐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라고 풀이했다.

우리 외교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며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국내외에 두루 보여주려는 장면"이라고 했다. 현재 자위대와 미군은 인도양에서도 인도 해군과 공동으로 훈련 중이다. 이 훈련에는 미국·인도·일본 등 3국 군함 10척이 투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