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할머니, 미안해요

입력 2015.10.19 03:00

김수혜 도쿄특파원
김수혜 도쿄특파원
15년 전 종로경찰서 출입기자였다. 2월 말 경찰서 벽에 '수요집회' 안내문이 붙었다. 3·1절이 수요일인데, 그날 꼭 400회가 된다고 쓰여 있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내려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아홉 분을 뵙고 3·1절 아침 사회면 톱을 썼다.

그때 나는 할머니들 얘기에 분개하고, 사회면 톱을 쓴다는 데 흥분했다. 분개하는 사람이 많으면 난제도 거뜬히 해결된다 여겼다. 기자의 소명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나처럼 분개하게 하는 데 있고, 거기까지 해내면 '임무 끝'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순진했던 걸까, 어리석었던 걸까.

그날 뵌 할머니 중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

"암으로 먼저 간 다른 할머니가 '아무래도 더 못 살 것 같으니 내 몫까지 뛰어달라'고 했다"던 김순덕(1921~2004) 할머니. 마지막까지 데모하다 11년 전 늦여름에 별세하셨다.

"더 늙으면 기어서라도 데모하러 가겠다"던 노청자(1920~2004) 할머니. 김 할머니가 가시고 두 달 뒤 한여름에 눈을 감았다.

"겨울에 시위하러 가는 게 제일 힘들다"던 박옥련(1919~2011) 할머니. 2010년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꽃피는 봄날 돌아가셨다.

"얼마나 더 기자들을 만나서 가슴 도려내는 옛날이야기를 계속해야 사죄를 받아낼 수 있느냐"던 이용녀(1926~2013) 할머니. 말씀 끝에 우셨는데, 2년 전 여름날 별세하셨다.

그때 나는 위안부 문제가 얼마나 풀기 어려운 문제인지 몰랐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금방 이 문제를 잊고 다음 톱으로 넘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때 살아 계시던 할머니 150여 분 중 100여 분이 돌아가셨다. 요즘 나는 조선일보 도쿄지국에 앉아 15년간 더 두꺼워진 위안부 사료(史料)에 빨간 줄을 쳐가며 '이 문제가 여태 해결되지 않았다'는 기사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가슴에 파고드는 궁금증이 '해결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요구의 핵심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는 대일본제국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전쟁 범죄였고, 그 책임은 대일본제국과 대일본제국을 계승한 일본국에 있다'고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걸 할까? 안 할 것이다. 아베 총리의 다음 총리는 할까? 가능성 낮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 대목에서 한국 정부, 한국 여야, 한국 국민 개개인은 뿔뿔이 흩어진다. 우리에겐 '100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설욕하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국론(國論)이 없다. '일본이 나쁘고 아베가 나쁘다'는 원론만 있다. 우리끼리 서로에게 욕먹을까 봐 아베 총리 욕만 줄기차게 반복한다.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도 혼네(本音·본심)와 다테마에(建前·겉마음)가 있다.

역사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강해지는 것이다. 일본은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반성하지 않는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잊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되 실리(實利)는 야무지게 챙겨가면서 끈질기게 매일 조금씩 그들보다 더 강해지는 것만이 어느 날 아침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문제 현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우리를 세워놓을 수 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피치 못하게 많은 할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게 먹먹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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