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

조선일보
  • 남정욱·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입력 2015.10.17 03:00

    [남정욱의 명랑笑說]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
    나도 서울대 가고 싶었다. 일단 폼이 난다. 누가 어느 대학 다니느냐고 물으면 별로 밝히고 싶지 않다는 듯 시큰둥한 목소리로 "S대요"라고 하거나 "울대요" 대답하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성적표에 적힌 아래위 숫자 중 어느 것이 전체 인원이고 어느 것이 등수인지 구별할 수 없으므로 다소 파렴치한 욕심이었다. 당연히 못 갔다. 그래서 서울대 아래 아래 그 밑에 또 아래 아래에 있는 대학에 갔다(성적이 그 지경이면서 어떻게 대학에는 갔느냐고 물으신다면 국어와 영어가 암기 과목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서 알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신나게 놀아 젖힌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소개팅 자리에서는 석조(石造) 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실력이 없어서 못 간 것이라 하나도 분하지 않았고 서울대 다니는 애들이 대접받는 것을 시샘해 본 적도 없다. 서울대 못 간 놈이 비슷한 대접을 바란다면 그건 정말 나쁜 놈이다. 최소한 나쁜 놈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삼성 가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역시 못 갔다. 대신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직원 열 명 미만의 회사를 전전했다. 대접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격적인 모독이나 불합리한 근무 조건을 감수해야 했고 임금은 수시로 떼였다. 거래처에 갈 때 든 교통비를 정산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고 억울했지만 반복되다 보니 견딜 만했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사장은 어디서 놀다 들어왔느냐고 타박하기 일쑤였고 늦을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이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야근하다가 차가 끊기면 택시를 타는 대신 사무실에서 잤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잤지만 요령이 생기니까 책상을 싹 치우고 그 위에서 자는 비법도 터득했다. 난로에 석유가 떨어지면 파카를 두 겹으로 입고 버텼다. 한번은 너무 추워 석유를 주문했는데 당연히 내 돈으로 냈다. 다음 날 빤히 알면서도 사장은 줄 생각도 안 했다. 물론 받을 엄두도 못 냈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운이 닿아 처음으로 직원이 100명 정도 되는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 역시 처음으로 교통비 정산을 하면서 눈물이 났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데 100% 동의하기 어렵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학교에 부스를 설치하고 취업 상담을 하는 업체들에 물어보면 작은 회사에는 전혀 관심을 안 보인단다. 작은 데다 지방이면 절대 안 간다. 학벌이나 실력에 따라 차등의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피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눈앞의 즐거움을 희생해가며 도서관을 들락거린 애들에 대한 모욕이다. 노력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듯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교생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하는 기이한 현실에서 단지 4년제를 나왔다고 좋은 일자리를 고집한다면 거울부터 다시 볼 일이다.

    '세상은 고수들에게는 놀이터고 하수들에게는 지옥이다'라는 영화 대사가 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 대사에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한다. '헬조선'은 분수(分數)를 상실한 불평분자들의 마음속에 있다. '헤븐 조선' 역시 마음속에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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