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원회가 8일 비밀 유지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에게 자격정지 6년과 벌금 10만스위스프랑(약 1억1600만원) 처분을 내렸다. 반면 제프 블라터 FIFA 회장과 미셸 플라티니 UEFA(유럽축구연맹) 회장에겐 90일간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이로써 정 명예회장은 내년 2월 차기 FIFA 회장 출마가 어려워졌다.
FIFA는 징계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번 처분은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FIFA는 당초 정 명예회장이 2022년 월드컵 한국 유치를 추진하던 2010년 '축구 발전기금을 조성해 저개발국을 지원하겠다'는 서한을 각국 축구협회에 보낸 것에 뇌물 공여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자격정지 19년을 매기려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건 쏙 빼고 비밀 유지 위반 같은 모호한 내용만 문제 삼아 6년 자격정지와 벌금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뇌물수수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한 블라터 회장과 블라터 회장으로부터 200만스위스프랑(약 24억원)을 받은 혐의로 스위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플라티니 회장에겐 자격정지 90일 처분을 내렸다. FIFA가 뇌물은 받더라도 내부 비밀만은 지켜야 한다는 마피아식 규범을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준 결정으로 보인다.
정 명예회장은 2011년 FIFA 부회장 5선에 도전했다 실패한 뒤 줄기차게 FIFA 개혁을 요구해왔다. 17년간 'FIFA 제국'을 쥐락펴락해 온 블라터 회장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을 두고 블라터 입김 속에 있는 FIFA가 정씨에게 '괘씸죄'를 때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FIFA는 회장 자리,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놓고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의혹으로 미국과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런 황당한 징계를 내리는 것을 보면 FIFA가 깨끗한 승부에 열광하는 수십억 축구팬을 조롱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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