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달 중순 미국 싱크탱크 및 대학 세미나에 다녀왔다. 돌아온 지 3주가 되어가는 데도 뒷맛이 씁쓸했다. 한국 외교에 대한 외부의 지적들이 뇌리에 되새김질하듯 맴돌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 비친 9월 3일 대통령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과 한·중 정상회담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북한 특사 최룡해에 대한 중국의 대우는 북·중 관계의 냉랭함을 보여주었고, 3년째 열리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담 재개의 숙제를 풀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보는 워싱턴 지식인들의 시각은 생각보다 냉랭했다. 한 미국 학자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미국에는 못마땅하다(disturbing)고 표현했다. 한국이 중국에 경사돼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핵심이었다. 한국이 분명한 어젠다를 가지고 베이징에 갔고 미국과의 동맹에서 이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 참석자들은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는 여섯 번이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만나지 않은 데 대한 의구심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이 중국 경사론을 퍼뜨리는가 싶었는데, 미국 참가자 한 명이 '장차 한국이 중국과 연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중국 학자가 하더라고 귀띔해 주었다. 한국 내에서는 우리가 중국에 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는데 외부의 시선이 고깝지 않다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흔들리지 않는 초석이자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시키지 않으면 워싱턴 내 한국의 중국 경사론은 잔불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 측은 동아시아 지역의 맥락에서 미·일 동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기대던 일본이 미국을 도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나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한국만이 누려 왔던 동맹의 쌍무적 역할 부담을 일본도 미국과 더 과감하게, 더 넓게, 더 많이 질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변화한 미·일 관계의 맥락에서 한·미 동맹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할 때가 왔다. 글로벌화한 미·일 동맹에 비해 한·미 동맹은 한반도에 갇혀 있다. 한반도를 벗어난 동아시아 분쟁에 대해 한·미 동맹은 아주 한정적으로 대응할 공산이 크다. 미국인의 눈으로 보면 지역 전체에서의 동맹 가치가 역전될 가능성을 안게 된 것이다. 역사 문제를 놓고 워싱턴에서 벌이는 한·일 간 공방은 그래서 더욱 힘을 잃어갔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한·일 간 공공 외교 공방은 결국 서로가 패자가 되는 게임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게 워싱턴의 중론이다. 결국 지도자들 간 관계 악화로 상징되는 한·일 관계를 복원시켜야 하는 변곡점에 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한·일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전달하고 관계 개선을 앞당길 수 있는 미국의 촉매제 역할이 있다면 조용하게 측면 지원을 요청하는 게 좋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에 대한 미국의 기대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갖는 것보다 낮다. 미국은 북한이 늘 속임수만 쓰고 진정성 있는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북한의 노선 전환이나 북한의 붕괴밖에 없다는 강경론이 강하다. 북한에 대해 무엇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논의되는 통일 대박론이나 통일 준비론은 정책이라기보다는 구호에 가깝다는 지적도 타당했다. 북한을 비핵화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압력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논지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의 실질적 과정에 대해 미국 조야와 차근하게 논할 때가 아닌가 싶다. 통일은 준비한다고 오는 게 아니라 정책을 통해 서서히 유도해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