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댓 살 때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원작자 호리 다쓰오는 '묘하게도 단 하나 뚜렷이 남아 있는 기억'을 자전소설에 이렇게 썼다. '엄마의 등에 업혀 하늘 한 곳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빛이 분수처럼 쏟아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엄마의 등에서 나는 덩실거리고 있었다.' 호리는 1904년생이다. 이미 그때 일본의 불꽃놀이는 무척 화려했던 모양이다.
▶일본에선 불꽃놀이를 '하나비(花火)'라고 한다. 아사히신문이 설문조사에서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수박과 빙수보다 '하나비'를 첫손에 꼽았다. 일본에선 늦여름 전국 700여곳에서 불꽃 축제를 한다. 그러니 웬만한 일본인에겐 '하나비'와 연관된 추억이 있다. 아빠의 어깨, 엄마의 등, 연인의 손…. 불꽃놀이의 특징은 '무차별성'이라고 한다. 남녀노소, 빈부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리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리가 본 하나비는 도쿄 '스미다(隅田)강 불꽃놀이'였다. 1732년 굶어 죽은 사람들의 진혼(鎭魂)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100만명이 인근에 몰린다. 이 '하나비'를 구경간 것은 2007년이었다. 시작 한 시간 전 불꽃이 보인다는 강변 '명당' 근처에 도달했다. 사람들이 빌딩 사이 지정된 길을 걸었다. 거북이걸음만큼 느렸다. '조금만 더 바짝 붙어 빨리 걸으면 명당까지 갈 수 있는데' 하고 애태우다 보니 불꽃놀이가 끝났다. 대포 소리만 들었을 뿐 불꽃 한 점 보지 못했다.
▶그날 사람들은 통제당했다. 수많은 안내원이 곳곳에 서서 빨리 걷지도 앞서가지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엄격함이 대참사에서 나온 대책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2001년 아카시(明石) 불꽃놀이에서 11명이 압사하고 247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에 9명이 어린이였다. 인력이 부족해 병목 구간 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훗날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참사를 가리켜 '지옥도(地獄圖) 같은 군중의 눈사태'라고 했다.
▶지난 주말 서울의 밤을 불꽃 축제가 화려하게 밝혔다. 규모, 내용 모두 세계적 수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축제를 보려고 몰린 사람도 80만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30t 쓰레기더미는 여전했다. 우리 불꽃놀이 역사는 길지 않다.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는 커지고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위험과 후유증은 쓰레기쯤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꽃놀이의 웅장함에 걸맞은 시민의식과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