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닭값과 치킨값

입력 2015.10.05 03:00

서울 구반포아파트에 38년 된 통닭집이 있다. 길가로 난 유리창 안에서 꼬챙이에 꿴 닭들이 게으르게 돌아간다. 두어 시간 도는 사이 노릇해지면서 기름이 쏙 빠진다. 거기에 다진 마늘을 살짝 익혀 듬뿍 얹어낸다. 퍽퍽하지 않을뿐더러 알싸하게 밴 마늘 향이 여간 풍미로운 게 아니다. 전기 구이 마늘 통닭이다. 좁고 낡고 어두운 실내에 황동규 시가 붙어 있다. '대설(大雪) 날, 고(故) 김현에게'다.

▶"오늘 양평/ 네 잠들어 있는 곳에 가/ …/ 청주 한 잔 땅에 붓노니/ 그 땅이 네 무덤이건/ 우리 자주 다닌/ '반포치킨'이건…". 이 집은 구반포 살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단골집이었다.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외상장부 터놓고 무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이청준부터 황지우까지 문인 아지트가 됐다. 지금도 김현을 그리는 문우(文友)와 후학들이 찾아든다. 여주인은 김현의 미결(未決) 외상장부를 여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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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구이는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 '치킨사(史)'의 출발점이다. 1961년 서울 명동영양센터가 전기 구이를 시작하기까지 닭 요리라면 백숙·삼계탕·닭볶음탕쯤이었다. 영화 '집으로'에서 어린 유승호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한다. 할머니가 백숙을 해주자 "물에 빠진 닭은 싫어" 하며 엉엉 운다. 이 땅에서 '치킨'은 '닭'의 영어가 아니다. 집에서 시켜 먹고 어디서든 맥주와 즐기는 특유의 음식 문화다.

▶'통닭'이 '치킨'으로 바뀐 것은 70년대 국산 식용유, 80년대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면서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줄곧 외식 메뉴 1위다. 이제 치킨집이 3만6000곳, 치킨 파는 맥줏집까지 합치면 5만 곳에 이른다. 편의점 두 배다. 키우는 닭이 1억2000만 마리에 치킨 시장은 한 해 5조~6조원 규모다. 9월 닭고기 1㎏ 값이 8년 만에 1075원까지 떨어졌다. 10월 들어서는 더 내려가 900원대에 거래된다고 한다. 공급은 그리 늘지 않았는데 소비가 줄어든 탓이다.

▶올여름 복날 성수기에 날씨가 궂었고 메르스로 외국인 관광객까지 끊겨 삼계탕이 안 팔렸다고 한다. 게다가 10월부터 닭고기 비수기가 시작됐다. 그런데도 1㎏ 채 안 되는 프랜차이즈 치킨 한 마리 값은 2만원에 육박한다.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까지 10년쯤 닭을 쳤지만 "한 해도 재미를 못 봤다"고 했다. 그가 시 '만용에게'에서 넋두리했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양계 농가는 울상이고 배 두드리는 데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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