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공천 방식을 둘러싼 당·청(黨·靑) 갈등이 2일 양측의 확전 자제로 외견상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 등을 들어 이번 파동도 결국 청와대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이란 평가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 외교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관련, "국민들이 알아들으시겠느냐"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청와대 측과 친박계 의원들이 공세에 가세했고, 김 대표는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로 새누리당에 비박(非朴)계 김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벌어지기 시작한 당·청 갈등에서 다시 한 번 청와대 내지 박 대통령이 우위를 보인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 대통령의 이른바 '오더(order·지시) 정치'가 또 위력을 발휘했다"는 말도 나왔다.
새누리당 의원 분포를 보면 친박(親朴)계보다 비박계가 수적(數的)으로는 앞선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 때문에 김 대표가 선출된 전당대회를 비롯해 국회의장·원내대표 경선 등에선 항상 비박계가 승리했다. 지난해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선거 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친박계는 비박계에 밀려 패하기 일쑤였다.
당 안팎에선 "이제 친박계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새누리당은 확실히 비박계가 접수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선 여당이 청와대에 매번 밀렸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 방문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그것도 청와대발 개헌 함구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이뤄진 비박계 당 대표의 첫 번째 '도발'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 대신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김 대표는 하루 만에 "죄송하다"며 물러섰다. 지난 5월 공무원연금법 처리에 연계돼 돌발한 국회법 개정안 파동도 "배신의 정치는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언명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정리됐다. 한 관계자는 "매번 여당이 배수진을 친 듯 맞서다가 박 대통령 한마디에 그대로 꼬리를 내렸다"며 "친박계는 약한데 박 대통령은 당을 압도해왔다"고 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임기가 반환점을 돌면 여당에 대한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인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이 여당 내 비주류의 벽에 막혀 부결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그 이후 집권 4년 차에는 공천권마저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넘겨줘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였던 2005년 야당을 상대로 꺼내 든 대연정(大聯政) 카드는 "혼자 잡은 정권이냐"는 당시 여당의 비난과 함께 휴지 조각이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임기 3년 차를 지나고 있지만 당·청의 무게추가 여전히 청와대 쪽에 가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박 대통령은 대구·경북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20%대의 단단한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다"며 "이것이 집권 후반기에도 당을 좌지우지하는 힘의 근원"이라고 했다. 비박계 의원들이 수적으로는 많지만 구심점 없는 모래알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비박계 구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 대표가 미래 권력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