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입력 : 2015.09.26 03:00

    한현우 문화부 차장
    한현우 문화부 차장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용돈을 받곤 했다. 대개 친척 어른이거나 아버지의 친구분이었다. 아버지도 추석 용돈을 주실 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그것은 '공부 열심히 하면 돈 생긴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딸아이에게 용돈을 주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내가 대꾸했다. "왜 내 딸한테 네가 공부하라고 하냐?" 친구는 "하여튼 이상한 놈"이라며 "그럼 뭐라고 말하냐"고 되물었다. 나는 지지 않았다. "넌 공부 안 해서 그 모양이냐?"

    친구는 공부를 잘했고 좋은 대학을 나왔으며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가 IMF 외환 위기 때 회사가 망한 뒤로 줄곧 비실비실하고 있다. 그는 공부 열심히 한 것이 인생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겪고 또 증명하고 있으면서도 관성적으로 남의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지금의 20대도 우리 세대와 똑같다는 것이다. 강의 뒤풀이 자리에서 대학생들은 내게 초등학생 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반사적으로 묻는다. "공부 잘해요?" 나는 대답한다. "내 딸 성적을 네가 왜 궁금해하냐?"

    대체 남의 아이가 공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왜 묻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숙제하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공부 안 하면 성적이 떨어질 것이고, 숙제 안 하면 싫은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 깨치는 것이 진짜 공부다.

    물론 공부를 잘하고 또 좋아하는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더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아이에게 '축구 열심히 하라' '피아노 열심히 치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던 시절 어른들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덕담 말고 해줄 말이 없었다. 그것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이 개천도 아니고 용이 되어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시대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공부 열심히 하라'고만 한다. 공부 못해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나 대신 한풀이해다오" 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미래가 보장될 확률은 과거보다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봐야 좋은 대학에 가기가 너무 어렵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이다. 다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었고 다들 공부 열심히 했더니 공부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설령 공부를 정말 잘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한들 컨베이어 벨트처럼 앉아만 있으면 착착 승진하고 정년까지 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어른들이 더 잘 안다. 그런데도 해줄 말이라곤 "공부 열심히 해라"밖에 없으니 딱한 일이다.

    이번 추석엔 아이들에게 다른 덕담을 건네는 게 좋을 것이다. 공부 열심히 했는데 좋은 대학 못 갔고, 좋은 대학 나왔는데 좋은 회사 취직 못 한 아이들의 원성(怨聲)이 자자하니까 말이다. 자칫하면 "말씀대로 공부만 열심히 했더니 요 모양 요 꼴이 됐어요" 하는 볼멘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