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추석과 '내비'

    입력 : 2015.09.26 03:00

    [편집장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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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으로 쭉 달려. 가다보면 집에 가는 도로로 이어지는 출구가 나올 거야." 워싱턴 특파원으로 간 지 며칠 안 돼 그곳 지리를 몰라 쩔쩔맬 때, 선배는 이렇게 길을 알려줬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밤하늘엔 커다란 보름달이 땅에 닿을 듯 무겁게 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달은 왜 그렇게 커보였는지. 제가 살면서 본 가장 크고 가장 잊을 수 없는 달은 그날 밤 본 그 달이었습니다.

    ▶그때는 길 알려주는 '내비(내비게이션)'도 없었습니다. 인터넷으로 길을 찾아 인쇄해두거나 미리 공부하고 다녔습니다. 차엔 두꺼운 지도책을 몇 권씩 싣고 다녔지요. 그러다가 내비가 나왔는데, 미국 남부 도시에 출장 갔을 때 처음으로 내비가 장착된 차를 빌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하더군요. "불법이 아니라면 여기서 유턴하세요."

    ▶요즘엔 내비가 더 똑똑해졌습니다. 어느 길로 갈지 물어보는 건 물론, 퇴근 무렵 귀가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아봅니다. 길에서 너무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좀 더 늦게 출발합니다. 요즘엔 내비 덕에 명절 귀성길도 예전처럼 막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마트 기기와 앱은 확실히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를 줄여주지요.

    ▶그래도 가끔은 낯선 도시에 가서 지도를 들여다보며 긴장한 상태로 운전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내비의 발전은 일상의 불확실성을 줄여줬지만 동시에 의외성도 빼앗아갔습니다. 예측 가능해지니 모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비의 지시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 따라가다보면 내비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아서 뒤로 갈수록 빨리 풀린다고 합니다. 1년이 지나가는 속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상반기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데 여름 휴가 갔다 와서 일하다가 추석을 지내고 나면 갑자기 찬바람이 붑니다. 그러다보면 주위에서 송년회 날짜 잡자고 하겠지요. 그래도 추석 휴가는 느긋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앞일 걱정하며 보내기엔 너무 좋은 계절이니까요. 풍요로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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