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KTX 표를 끊었다. 축제로 가는 승차권이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용관·강수연)가 10월 1~10일 영화의전당, 해운대, 남포동 일대에서 열린다. 서울역에서 158분이면 영화의 바다에 닿는다.
올해 영화제는 인도로 열리고 중국으로 닫힌다. 자아를 찾아 나선 인도 젊은이를 따라가는 '주바안'(감독 모제즈 싱)과 과부를 돌보다 사랑에 빠지는 중국 멜로드라마 '산이 울다'(래리 양)는 개·폐막작답게 예매 시작 3분 만에 매진됐다. 걱정은 붙들어 매시길. 75개국에서 온 302편이 남아 있다. 홈페이지(www.biff.kr) 참조.
1. 추천작
택시가 영화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자파르 파나히(이란)가 연출한 '택시'는 노란 영업용 택시가 테헤란 거리를 누비며 승객을 실어 나르는 이야기다. 감독인 운전기사가 말을 걸고 승객이자 배우가 응답하는 방식.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다른 아시아 영화로 하니 아부―아사드(팔레스타인)의 '더 아이돌',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의 '찬란함의 무덤'을 추천했다. '더 아이돌'은 '오마르'로 2013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아부―아사드 감독의 신작. 중동에서 화제를 모은 '아랍 아이돌'의 우승자 모하메드 아사프의 실화를 영화로 옮겼다. 노래는 흥겹고 시각은 예리하다. '찬란함의 무덤'은 수면병에 걸린 군인이 경험하는 마법과 치유, 로맨스를 따라간다.
거장의 장르 영화들도 부산에 짐을 푼다. '디 아더스'로 기억되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스페인)는 딸을 학대한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스릴러 '리그레션'에 오싹한 반전을 매설했다. 남녀 주인공 이선 호크와 에마 왓슨도 믿음직스럽다.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마약과 펼치는 전쟁을 그린 드니 빌뇌브(캐나다)의 범죄 스릴러 '시카리오'도 기대작이다. 이탈리아 명장 파올로 소렌티노는 은퇴한 세계적 지휘자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유스'로 시곗바늘을 되돌린다.
2. 특별 기획과 사람들
20주년을 맞아 아시아 영화의 역사를 조망할 '아시아 영화 100'을 선정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허우샤오셴의 '비정성시',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 김기영의 '하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을 비롯한 베스트 10이 상영된다. 명작을 몰아서 볼 기회다.
일본 애니메이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는다. 수상을 기념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등을 다시 상영한다. 부산시립미술관에 가면 지브리 원화 450점과 영화 속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배우로는 소피 마르소(제일버드), 나스타샤 킨스키(심사위원), 탕웨이(세 도시 이야기), 하비 키텔(유스), 이은심(하녀), 감독으론 바흐만 고바디(나라 없는 국기), 레오스 카락스(나쁜 피), 차이밍량(오후) 등이 부산에 온다. 아시아 액션 영화의 대표작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만든 정창화 감독도 개막식을 찾는다. 자원봉사자 813명도 손님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3. 부산의 매력
부산은 거대한 세트장 같다. 천만 영화 '국제시장' '도둑들' '변호인' '해운대'부터 올해 흥행한 '연평해전' '극비수사' '악의 연대기' 등을 모두 이 도시에서 촬영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공존한다는 게 부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도 식후경이다. 흥남철수 때 내려와 부산 밀면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우암동 내호냉면, 깡통시장 이가네떡볶이, 부산어묵과 돼지국밥…. 부산에서만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다. 헌책방 숫자야 서울이 많지만 골목 하나에 뭉치기로는 또 부산 보수동이 으뜸이다. '부산은 넓다'를 쓴 유승훈은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라고 부산을 정의했다. 해운대로 영화의 파도가 밀려온다.